[에세이] 김윤희 수필가

단풍이 막 스며 나오기 시작할 무렵 북촌을 찾았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현장이다. 창덕궁과 경복궁, 종묘를 중심으로 종로의 윗동네라는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주로 가회동, 계동, 재동, 원서동, 삼청동 일대를 일컫는다. 궁궐 옆에 위치한 만큼 왕족이나 권문세도가 양반들, 개화파들이 많이 살았다. 서울의 600년 역사와 함께해 온 전통 거주 지역이다.

세 번째 탐방 길임에도 처음인양 골목이 늘 새롭다. 한옥마을에 외국인들이 한복을 입고 골목길을 누비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한복대여점'이라는 상호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미 관광명소가 되었다는 증거다.

계동마님 댁으로 불렸던 북촌문화센터는 조선시대 탁지부 민형기의 집으로 그의 며느리가 1935년까지 살았던 집이라 한다. 궁궐을 지은 목수가 창덕궁의 연경당을 본떠 만들었고, 한옥의 배치와 담의 구성원리를 잘 볼 수 있는 양반가옥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서울시에서 북촌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매입하여 문화센터로 활용한다.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시설로 등록문화재 229호로 지정되어 북촌을 안내하고 있다.

"문화는 역사의 화석이고, 시간의 물결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인류의 함선이다" '북촌문화' 책자를 통해 어느 작가가 한 말이다. 참으로 적절하게 표현했다. 크게 공감이 간다.

정독도서관을 끼고 오르다 보니 조선 초기 명재상인 맹사성의 집터가 보인다. 이곳에서 '팔도지리지'를 편찬하였던 것일까? 그 옆 북촌전망대에 들어섰다. 전망대라야 2층 찻집 베란다에 불과했지만 지대가 높아 올망졸망 머리를 맞대고 있는 한옥 지붕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가까이에 눈을 두면 한복저고리의 배래선처럼 처마의 곡선이 아름다운 한옥들이요, 멀리 눈길을 두면 광화문 일대 직선의 빌딩숲이 보인다. 서울시내, 그것도 종로 한복판에서 예스러움과 가장 세련된 현대의 풍광을 함께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일이다. 몇몇이 각자 취향대로 주문한 차가 나왔다. 역시 대추차와 아메리카노가 한 쟁반 안에 나란히 놓여 있다.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서울을 내려다본다. 나의 20대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서울 아니었던가. 기와지붕 아래에서도 양반과 서얼의 차별, 개화파 수구파의 고뇌와 갈등이 혼재해 있었으리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집회 현장의 왕왕대는 소리가 예까지 들려온다. 사색당쟁의 폐해는 예나 지금이나 나아진 것이 없다. 치열한 정쟁에 본질은 어디가고 에둘러진 말들만 난무한 세상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고즈넉한 한옥마을의 정취를 느끼려던 심상에 금이 간다. 양분되어 열리는 집회가 마음을 언짢게 한다. 내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그해도 그랬다. 아니, 그때는 폭력과 최루탄이 난무했으니 시위가 질적으로 높아지긴 했다.

1979년 나의 첫 직장은 서울특별시 경찰국 정보과였다. 특별한 사람으로 보였던 이들과 한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합류되었다. 정보과 업무는 특별했다. 사무실 문을 나가는 순간 다 잊어야 하는 업무를 다뤘다. 세상물정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에 나와 보니 다른 세상이 보였다.

서울은 나에게 세상에 대해 새로 눈을 뜨게 한 곳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느꼈다. 그동안은 교과서에서 유신의 3대원칙을 외우며 유신체제를 최고로 알았다. 나라에서 하는 것은 무조건 다 옳은 것이고 따라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제대로 된 정보를 보고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목소리가 그렇게 많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유신철폐 운동, 긴급조치 9호 위반, 살벌한 말들이 난무했지만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지나쳐 왔던 게 사실이다.

그해 부산, 마산에서부터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이른바 부마사태다.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들불처럼 일어난 데모, 시위대를 직접 목격했다. 서울역, 시청, 정부종합청사, 중앙청 일대 차도가 사람들로 빼곡했다. 온통 시국이 초 긴장사태가 되더니 결국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일어났다. 최측근 부하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서이다. '10.26 사태'라고도 한다. 1972년 시작되어 철벽같던 유신체제, 18년간의 장기집권체제가 막을 내렸다. 내가 태어나서 느낀 가장 큰 국가 비상사태를 서울시경찰국, 지금의 서울지방경찰청 현장에서 맞았던 것이다.

김윤희 수필가
김윤희 수필가

내 20대는 서울에서 그렇게 격정의 시대를 함께 호흡했다. 어느덧 40년 세월을 넘어 다시 서울 복판 한옥마을에 섰다. 예의 그 전통을 살려 우리나라의 멋과 정이 다시 흥청한 시대를 꿈꿔보며 한 모금 남은 대추차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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