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류시호 시인·수필가

오랜만에 세종문화회관 음악회를 갔다. 평소에 하는 음악회와는 다른 이번 음악회는 예술단의 통합공연이었다. 세종문화회관은 개관 41년 만에 처음으로 산하 예술단 9개 단체 모두가 참여하여 '극장 앞 독립군'이라는 음악극을 만들었다.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홍범도 장군 이야기 '극장 앞 독립군'을 기획했다.

홍 장군은 100 년 전 일제 강점기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날으는 홍장군'이란 노래가 유행할 정도로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말년에 카자흐스탄의 낡은 고려극장에서 수위를 하면서, 생을 마감했단 얘기를 듣고 극장이라는 공간을 스토리로 꾸미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음악회에서 국악, 동요, 가곡,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한 작품 안에서 펼쳐지면서, 지루하지 않게 작품의 재미를 톡톡히 느끼게 한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독립군들이 일제의 탄압으로 만주나 중국 본토, 소련에서 독립활동을 했다. 장소가 카자흐스탄인 이유는 연해주에 사는 한인들이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 홍범도는 카자흐스탄으로 이주를 했다. 카자흐스탄은 재작년 필자의 성인대상 창작사랑방 강의에 카자흐스탄 알마티 노인대학에서 재능봉사를 하던 김정복 학장이 참여하여 그곳의 사정을 잘 알려주었다.

이번에 사용한 곡은 22곡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대하여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홍 장군은 자신을 위한 가족관리에선 패배하였지만, 조국을 위한 싸움에선 영웅으로 거듭나고, 두려움 속에서도 진정한 싸움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간적 면모를 보았다.

영국의 귀족 공작 가문의 처칠 아버지는 45세에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재혼을 했다. 장녀는 우울증으로 삶을 등지고, 차녀는 배우를 하다 스캔들과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영국의 영웅 처칠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배려심이 부족하였다. 그런 환경에서도 그는 세계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영웅이다. 처칠과 홍범도 장군처럼 영웅은 시대의 산물이고 내면은 자신의 고유한 것이다. 내면을 드러내는 외면이 그려져야 진정한 초상이 되는데, 영웅들의 당당함, 강인함과 아울러 쓸쓸함과 회한도 담겨 있다. 그리고 위대함과 허약함도 함께 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

처칠과 홍범도 장군의 삶을 보면서 누구나 한평생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도 우리는 희망과 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갑자기 불이 꺼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조금 후면 사물들이 희미하게 구별된다. 삶이 캄캄한 어둠을 준다 해도 기다리면 희망, 행복, 꿈들이 보인다.

문화예술을 즐기는 것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나는 것만큼 중요한 인생의 조건이다.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며, 여유 있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표 같은 역할을 하는 예술을 즐기며 살자.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한 이 음악극은 세종문화회관 공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덕분에 해외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의 삶을 살펴볼 수 있었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시간을 주었다. 세종문화회관이 더욱 발전하도록 기도해본다.

류시호 시인·수필가
류시호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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