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지난 주말 지리산 피아골 단풍산행을 마치고 계곡을 내려오면서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던 친구가 내뱉은 말. "우리도 지금 가을인데~." 나이로 치면 60을 넘겼으니 여름은 아닐 터, 그렇다고 아직 인생의 겨울을 맞이한 건 아니니 그의 말이 맞다. 그냥 웃었지만, 그 말이 퍼뜩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이렇게 자연은 아름다운 풍광과 과실로 우리를 기쁘게 하는데, 60대에 이른 내 인생은 얼마나 아름답게 물들고 있으며, 얼마나 세상을 밝히고 있는 걸까. 돌아오는 동안 그 친구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영화제목이 생각날 정도로 이 가을이 좋다. 맑은 하늘, 부드러운 기온, 탐스러운 과실과 짙어가는 단풍을 바라볼 때 마다 감사하고 감격한다. 나이 60을 넘겼으니 그 숫자만큼 가을을 맞고 보냈을 텐데, 유독 이번 가을이 이렇게 멋지고 아름답고 고맙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살아 있는 것 자체로 감사할 일이니,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렇게 바라던 내일'이라던 에머슨의 말처럼, 새삼 오늘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해서일까.

돌아보면 오로지 감사할 뿐이다. 20대에 법률가의 소명을 확인하고 준비해 요행히 시험을 거쳐 법률가로 훈련받으며 자랐다. 30대에 나라 도움으로 미국유학의 행운을 얻어 공부하면서 소명을 재확인하고 조직을 위해 일했더니, 마흔 되기 전 공군 법무병과장으로 쓰임 받았다. 40세에 고향에 돌아와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최선을 다하려 했다. 변호사로서는 물론, 겸임교수, 방송 법률상담, 시사프로 진행 등 다른 일로도 많이 쓰임 받았다. 50대에 지역과 나라를 위해 선거관리위원, 국민권익위원, 중앙소청심사위원 등 각종 위원회의 구성원, 나아가 국제라이온스협회 국제이사 겸 한국연합회장 등으로 쓰임 받는 영광을 입었다.

이제 60대에 이르러 법조인으로서는 거의 40년 가까운 선참자(先站者)가 되었다. 다른 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가. 이렇게 멋진 가을처럼 지금 제대로 열매 맺고 있는가. 세상에 대해 다소라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나 한 건가.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는 에너자이저(energizer)로 살기를 소원하며 기도하지만,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기대어 한 목숨 살려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성경 전도서 3장은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고 가르친다. 그동안 달려온 삶을 돌아보아 시절에 맞는 삶이 무엇인지 궁구(窮究)하며 살아야 한다. 간혹 나이 들어서도 시절(時節)을 잊고 의욕만 앞세워 무리하게 나아가려 하거나, 거꾸로 열정을 잃고 존재가치에 회의를 갖게 되는 경우, 모두 경계해야 할 일이다.

최고의 계절, 가을. 풍성한 열매와 아름다움으로 기쁨을 주는 자연 속에서 우리 일상사도 더 유익한 것으로 채워져 개인, 가정, 일터, 지역사회, 나라 살림살이 모두 최고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렇지만 그저 '좋다 좋다'만 연발하며 살 순 없다. 지금 해야 할 알맞은 일을 해야 한다. 머잖아 더 이상 일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추위가 닥칠 것이기에. '그리하여 나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전도자가 말하듯(전도서 3장 22절),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 열심히 때에 맞은 일로 이웃을 섬기고, 그 속에서 기쁨을 누리며 사는 인생의 가을되기를 소원한다.

유재풍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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