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규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누구에게 나의 슬픔을 이야기하나?'로 시작하는 안톤 체호프의 단편 '애수'에서, 마부 이오나는 손님이 마차에 탈 때마다 슬그머니 아들이 죽은 얘기를 꺼내지만 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모두 잠든 새벽 마구간에서 자기 말에게 아들의 죽음을 얘기한다. 늙은 말은 건초를 먹으며, 이야기를 들으며, 주인의 손에 입김을 내뿜고, 마부는 아주 열심히 말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밥 묵자." "므라 쳐 씨브리쌌노?"의 유행어를 낳은 개그프로 '대화가 필요해'는, 가족간 대화의 필요성을 코믹하게 풀어내어 2년 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장수했는데, 이 코너의 시그널 음악도 더 자두의 노래 '대화가 필요해'였다. "대화가 필요해 우린 대화가 부족해/서로 사랑하면서도/사소한 오해 맘에 없는 말들로/서로 힘들게 해?"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상대방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경험하지 않고 있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모니터의 메시지를 통해 상대의 존재를 확인할 뿐이다. 친구간에도, 연인간에도, 부모 자식간에도….

미국의 휴대폰 사용자들은 평균 4분마다 휴대폰을 확인하고, 휴대폰이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하루 평균 6시간 이상을 보낸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이다. 거리엔 '스몸비'(스마트폰+좀비,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유령진동증후군'(진동이 울리지 않았음에도 진동을 느끼는 착각)을 겪고 있다.

하와이에서는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을 금하는 '산만한 보행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디지털기기 사용을 줄이는 '디지털 다이어트', '스마트폰 단식체험' 등이 웰빙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군에서도 일과후(오후 6시~오후 10시) 핸드폰 사용이 허용된 후 군장병들은 하루 평균 3시간 휴대폰을 사용한다고 한다. 월 평균 스마트폰 데이터 사용량도 일반인의 4배에 달한다는 보도다. 가히 '스마트軍'으로 불릴만 하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군장병들이 가족등과 영상통화를 하게 돼 면회객의 발길이 끊기고 매출이 40%이상 급감하여 지역 상권이 침체된다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나는 시인이 아니라서 짧은 카톡으로 내 마음을 다 전할 수가 없었네. 아침이 되어서야 사랑이 떠났음을 알았네.' 언어학자 촘스키는 '인간은 유한개의 규칙에 따라 무한개의 문장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디지털에 지배당한 어리석은 현대인들의 자책이다.

말해 뭐할까! 몇십 년을 함께 지낸 집사람과 아직도 실내온도에 대한 합의를 못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참을성 있게 듣고 답을 할 때는 신중하게 하자', '배려하지는 못할망정 무시하지는 말자'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다.

서원(書院)에 있는 소나무들은 공부하려는 듯 강학당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한다. 세상사 외면하지 말고 소나무처럼 기웃거려 보자.

"가까이 있는 단복숭아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신 똘배 찾으러 온 산을 헤맸구나." 이황 선생의 말씀처럼 가까이 있는 사람들 얘기부터 들어보자. 주변 사람들이 중한 사람들이니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생활에서, 동료간에도, 친구간에도, 연인간에도, 부모 자식간에도…. 촉촉한 사회를 두고 메마른 곳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가 대통령 주재 회의에 '스마트폰 휴대 금지령'을 내렸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수능시험장 들어가는 수험생들처럼 긴장하는 관료들의 모습과 표정이 그려진다.

스마트폰을 비닐봉지에 넣거나 머리에 묵고 사우나 들어가는 사람, 회식 때 발목 부위 양말에 넣는 사람, 양복 안주머니에 손이 자꾸 가는 사람, 모두가 '잠재적 위험 사용자군'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현대인들에게 돈을 내고 스마트폰을 뺏기는 사업이 명상원이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외출 나온 여러 장병들에게 물어보니 일과후에는 거의 스마트폰과 함께 한다고 했다.

김규완 충북중앙도서관장
김규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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