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최시선 수필가·광혜원고 교장

드디어 8주간의 훈민정음 해례본 공부를 모두 마쳤다. 매주 목요일 학교에 조퇴를 내고 서울 광화문으로 달려갔다. 학교에서 청주로 와서 환승 주차장에 차를 대고, 다시 고속버스로 서울을 향한다. 도착하자마자 급히 지하철 3호선을 탄다. 지하철은 언제나 만원이다. 서서 한 40여 분 정도를 달려서 경복궁역에서 내린다.

시간이 나면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으로 간다. 대왕을 알현하기 위해서다. 두 손을 모으고 정중히 올려다본다. 대왕은 미소를 지으며 그윽하게 나를 바라본다. 어느새 내 눈은 대왕이 왼쪽 손에 들고 있는 책에 꽂힌다. 아, 저 책을 내가 배우다니! 솔직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 책이 훈민정음인지 몰랐다. 글을 쓰면서 가끔 이 글자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면서도 공부해볼 생각은 못했다. 그냥 상식적으로 그래, 한글! 세종이 만든 위대한 글자지 하는 정도였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순전히 영화'나랏말싸미'였다. 이를 보고 난 후 의문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아니, 한글창제가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졌다는 말인가?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이 함께 만든 것도 아니고, 세종 혼자서 만든 것도 아니란 말인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우선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부하기로 했다. 이 강좌는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세종학교육원에서 개최하는 공개 강좌였다. 벌써 10기 째 진행되고 있었다. 더 궁금한 신미대사는, 이를 알아본 후 차차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개천절 공휴일에 국립한글박물관에 갔었다. 모르고 있던 한글박물관이 궁금했고, 신미대사에 관한 기록이 있는지 알고 싶었고, 훈민정음 해례본 영인본이 있으면 사고 싶어서였다.

한글박물관은 한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옆에 있다. 2014년 10월 9일에 개관했으니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특히 학생들에게 산 교육장이 될 것 같아 흐뭇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신미에 관한 기록은 없었다. 훈민정음 언해본 중 몇 개의 책에 약간 언급이 있을 뿐이었다. 창제에 관여했다는 것은 아직 설에 불과하지만, 훈민정음 보급에 엄청난 공을 세운 것은 역사적 사실인데 말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보았다. 영인본이 있기는 한데 허접했다. 그럼에도 11만원을 달란다. 이거라도 사?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혹시 몰라서 청주 우리문고에 전화를 했다. 지인이 알려준 터였고, 한 달 전에 이미 전화로 살 의향을 밝혔었다. 이튿날 바로 갔더니 밖에 내 놓았다. 찾는 이가 없어 그동안 창고에 있었단다.

펼쳐보는 순간 아, 우리의 세계기록유산이여! 세어보니 정확하게 장수가 33장이다. 영인본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은 이 복간본이 90만원을 호가한단다. 문제는 서점에 없어서 사고 싶어도 못 산다. 그런데 이걸 내가 손에 넣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이 복간본은 2015년에 훈민정음 반포 570주년,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간송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는 원본과 가장 가깝게 제작한 것이다. 쉽게 말해, 원본 복제품이라 보면 된다. 훈민정음 전문가인 김슬옹 박사가 해제를 썼다. 하여 세트로 된 두 권의 책이다. 정가 25만원에 구입했다. 교보문고에서 한정으로 만든 거라서 지금은 희귀본이 되었는데, 그걸 정가로 산 것이다.

그걸 가슴에 품다니 감동이다. 광화문 세종대왕이 왼손에 든 책을 내가 소장하게 되었다. 비록 복간본이지만 갈피에서 책의 향기가 그윽하게 밀려온다. 오, 대왕의 높은 뜻이여! 이 책을 지금껏 서울에 올라와서 직접 해설한 분에게서 배운 것이다.

난 이 복간본을 앞에 놓고 삼배의 예를 올렸다. 여기에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 제자의 원리, 용례 등이 다 들어 있다. 바로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500부 정도 만들었다는 그 훈민정음이다.

나는 이 복간본을 소중하게 싸서 학교에 가져가, 선생님들에게 보여주며 설명을 곁들였다. 궁금해 하는 학생들이 직접 교장실에 찾아오기도 했다. 학생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주시했다. 자, 봐라. 여기서는 글자 순서가'ㄱ, ㅋ, ㆁ, ㄷ, ㅌ, ㄴ …'이런 순으로 되어 있지? 왜 그럴까? 이러자 학생들은 매우 의아해 했다. 나는 배운 대로 차분히 대답해 주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이 나이에 무엇을 얻겠다고 서울까지 8주 동안이나 오가면서 그 어려운 공부를 했단 말인가. 밤 10시 심야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12시다. '마친 보람'이라고 쓰여 있는 종이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희심의 미소가 흘렀다.

최시선 수필가·광혜원고 교장
최시선 수필가·광혜원고 교장


약력

▶2006년 월간 문예사조 수필 등단

▶CJB 청주방송 제5회 TV백일장 수필 장원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청주문인협회 부회장

▶저서 '청소년을 위한 명상 이야기', '학교로 간 붓다', '소똥 줍는 아이들', '내가 묻고 붓다가 답하다', 수필집 '삶을 일깨우는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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