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근 김지혜 교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란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사회복지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자의 글에 한 줄 한 줄 밑줄까지 쳐가며 오랜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여성의 차별을 다루어 화제가 되었던 '82년생 김지영'만큼이나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던 생각을 정리하게 도와주었다. 차별과 불평등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다 여겼지만, 이 책을 읽고 내가 가진 차별감수성에도 사각지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책의 앞부분은 '특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권을 알아차리는 확실한 계기는 나에게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는 바로 그때가 된다. 그리고 그 특권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더 이상 주류가 아닌 상황이 될 때, 그래서 전과 달리 불편해질 때 지금까지 누린 특권을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 뉴스에서 비장애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타는 시외버스를, 휠체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그동안 이용하지 못했고 이제야 일부 노선을 운행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보면서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타는 것은 비장애인이 누리던 특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권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것에 의해 불편함을 느끼는 이의 입장이 되면 다수가 누리는 것 그것이 특권이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를 눈치 채지 못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특권이란 주어진 사회적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해서 누리게 되는 온갖 혜택을 말한다. 남성과 여성의 문제를 보자. 영화로 만들어진 '82년생 김지영'이 소설과 다른 점은 남편의 역할이 더 강조된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책이나 영화에서나 지영의 남편과 남동생은 우리 사회에서 남성으로 살면서 누려온 유리한 삶이 특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지영의 마음을 알아가면서 조금씩 변화한다. 소설이 지영의 경험을 중심으로 객관적 근거를 들어 전개되었다면 영화는 주변 인물들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살짝 지루한 감도 들었지만, 지영이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이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하늘을 열어 보여주는 장면에서 막막함이 조금이나마 사라지는 것 같았다.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논란에서 남성이 느끼는 부당함의 감정을 앞선 설명과 빗대어 보면 남성인 자신들이 누리는 것이 일종의 '특권'이었음을 인식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물론, 남성들이 누리는 특권은 있어도, 살기 힘든 건 똑같다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지만 여성들과 비교해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유리한 질서가 있다는 것쯤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행히 영화를 본 남성들은 김지영의 이야기가 내 아내, 내 동생, 내 어머니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것에 공감하는 듯하다. 이런 다양한 반응을 예상한 것인지 영화에서도 남편의 친구들을 통해, 인식의 변화에 순응하고 여성의 입장을 이해하는 이와 지영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이의 대사로 우리 사회가 가진 양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지금은 차별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더 발견해야 할 때'라는 책의 글귀가 떠오른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날 것을 알았기에 손수건까지 준비해 조용히 혼자 보았다. 아이가 자라고 남편이 육아를 하면서 다시 글을 쓰는 김지영의 모습에 안도했지만, 더 속 시원한 해피엔딩을 보지 못해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영화든 책이든 꼭 권하고 싶다. 두 가지 모두 젠더를 강요하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살아내야 하는 삶을 과장 없이 보여준다. 우리 집 남자도 그동안 여성의 이런 삶을 몰랐지 싶다. 함께 영화를 보았다면 우리 딸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나눌 이야기가 많았을 것 같다. 혹시 보러 가자 청해오면 못 본 척 한 번 더 봐야겠다. 우리 집도 발견해야 할 것이 많으므로.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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