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용 흙 받았다' 땅주인 말 믿고 흥덕구청 단속 뒷짐
언론취재 시작되자 대책마련 눈치

지난 9월 3일 오전 8시께 중부매일 취재진에 포착된 산업폐기물 불법투기 모습(왼쪽)과 두 달여가 지난 31일 산처럼 쌓인 산업폐기물 모습. /신동빈
지난 9월 3일 오전 8시께 중부매일 취재진에 포착된 산업폐기물 불법투기 모습(왼쪽)과 두 달여가 지난 31일 산처럼 쌓인 산업폐기물 모습. /신동빈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허술한 행정당국의 대처로 청주시가 '폐기물 버리기 딱 좋은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흥덕구 상신동 청주테크노폴리스 인근 부지에 수백 톤에 이르는 산업폐기물이 버려지고 있지만 단속주체인 흥덕구청이 이를 알고도 수개월째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난 9월 경북 구미시 소재 폐기물 처리업체가 산업슬러지를 버린다는 신고(중부매일 9월 5일자 1면)로 구청 환경위생과 단속팀이 불법투기 정황을 확인한 곳이다. 당시 구청 담당자는 "7월에도 같은 장소에 폐기물이 무단으로 버려져 행정처분을 내렸다"며 "철저히 조사해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구청은 무단투기를 방조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토지주 A씨의 허무맹랑한 주장만 믿고 아무런 후속조치를 하지 않았다. A씨는 "밭농사를 짓기 위해 농사용 흙을 받았다"는 간단한 답변으로 구청의 감시망을 빠져나갔다. 이 말 한마디에 구청은 폐기물 불법투기정황에 대한 의혹을 모두 해소하고 사건을 덮었다.

이후 해당부지에는 수백여 톤의 산업폐기물이 거리낌 없이 버려지기 시작했다.

중부매일 취재진이 지난 9월 3일부터 2달여 동안 현장을 관찰한 결과 최근까지 수 십대의 화물트럭이 이곳에 폐기물을 버렸다. 폐기물이 일정량 쌓이면 굴삭기와 불도저를 이용해 땅을 고르고 그 위에 다시 폐기물을 버렸다. 작업은 대게 오전 9시 전에 이뤄졌다. 작업이 반복되면서 이곳의 지반은 두 달여 전보다 50~100㎝ 가량 높아진 상태다.

현장상황을 파악하고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구청 관계자는 "당시 사건 이후 몇 번 갔고 지나가면서 그곳을 봤다"며 "(쌓인 흙더미가) 폐기물인지 아닌지 단정 짓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디서 배출되는지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곳에는 CCTV가 없어 실질적인 단속이 어렵다"고 해명했다. 폐기물 불법투기가 충분히 의심되지만 CCTV 등 단서가 없다는 이유로 상황파악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이다.

언론취재가 시작되자 구청은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폐기물인지 단정 짓기 어렵다는 설명은 '명백한 폐기물이 맞다'는 입장으로 바뀌었고 토지주도 투기업체와 유착 가능성이 의심된다며 추가조사를 약속했다.

구청은 '불법투기 업체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에는 토지주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토지 원상복구 명령을 A씨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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