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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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부매일
  • 승인 2019.11.0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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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지인들의 청첩장이 가을임을 연상시킨다. 청첩장에는 행복을 꿈꾸고 행복을 완성하고 싶은 예비부부의 마음이 함께 온다. 얼마 전 처갓집의 예비 조카사위가 인사를 왔을 때는 행복이 얼굴에 배어왔다.

청주에 살고 있는 장인어른, 장모님, 처제들이 모두 모여 예비 조카사위를 축하해주기로 했다. 아내가 가족 밴드에 '예비 조카사위 청문회'라고 공지하며 준비물로 '예비사위 신상을 털 예리한 질문들'을 지참해줄 것을 정중하게 부탁했다. 공지사항을 접한 세 자매들의 반응은 '모 장관 청문회'를 떠올리게 할 만큼 격렬했고 어느 때보다 의기투합했다. 이에 화들짝 놀란 아내는 예비 조카사위의 당혹스럽고 곤혹스러운 마음이 걸렸던지 준비물을 '첫출발하는 부부로 세상에 나서는 예비신부·예비신랑에게 해줄 심금을 울릴만한 덕담들'로 수정해서 올렸다.

'예비 조카사위 청문회'는 외부에서 식사를 마친 후 큰 처제 집에서 이루어졌다. 아내는 새 가족으로 오는 예비 조카사위를 환영할 꽃다발을 예쁜 카드에 "한 가족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마음까지 듬뿍 담아 준비했다. 꽃다발은 "한 가족이 된 걸 환영하네."라는 장모님의 덕담과 처갓집 식구들의 환영 박수와 함께 전해졌다.

예비 조카사위 나름대로 청문회 예상 질문을 빈틈없이 준비하고 각오를 다졌겠지만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아내와 처제들은 온정이 담긴 덕담과 난감하고 짓궂은 질문들을 번갈아가며 쏟아냈다. "둘이 너무 잘 어울린다." "신부 어디가 좋아서 결혼을 결심한 거니?" "신랑 뭐가 좋아서 사랑에 빠졌니?"

조카와 예비 조카사위가 마음의 냉온탕을 드나들며 혼이 빠져있을 때쯤, 아내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특별제안을 했다. "쟤 결혼식에 우리 빨간색 바지 입고 가자! 하객들이 빨간 바지만 보면 신부 이모들이구를 알 수 있게"

처갓집 조카들 중에 제일 먼저 이루어진 '예비 조카사위 청문회'는 조카와 예비 조카사위 부부의 행복통장에 소중한 추억을 적립해주며 마무리됐다. 다음에 결혼할 조카들에게도 '예비 조카사위 청문회'와 '예비 조카며느리 청문회'를 열어 행복통장을 만들어 주기로 뜻이 모아졌고, 청문회는 처갓집 가문의 전통으로 맥을 잇게 되었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까? 인류학자, 심리학자, 내과 의사, 정신과 의사들로 구성된 하버드 연구팀은 2009년에 72년 동안 하버드대 2학년 학생들과 보스턴의 빈민가 출신 소년들을 대상으로 남성 724명의 인생을 통째로 추적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세계 최고 엘리트 집단의 학생들과 온수도 제대로 안 나오는 극빈층 가정의 소년들은 성인이 되어 공장 노동자, 변호사, 벽돌공, 의사, 대통령, 알코올 중독자, 조현병 환자로 살았다. 누적 연구비만 200억 원에 달하는 연구에서 찾은 행복의 답은 부, 성공, 명예가 아니라 '좋은 관계'였다.

조카 부부에게 '예비 조카사위 청문회'가 평생 좋은 관계로 살게 해주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조카 부부가 '독립적이면서도 친밀하고', '솔직하면서도 정중하고', '따뜻하면서도 엄격하고', '이성적이면서도 감정적인' 좋은 관계를 맺고 살면서 행복통장에 행복을 차곡차곡 쌓아갔으면 좋겠다.

조카가 헤어지는 인사를 하며 "그런데, 이모님들, 제 결혼식에 빨간 바지 입고 나타나시면 안돼요"를 수줍게 부탁하는데 틀림없는 예비신붓감이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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