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작은 거미 한 마리가 벽을 타고 올라가는 듯하더니 이내 거미줄을 타고 힘차게 내려온다. 어디로 갔을까? 시야에서 멀어진 거미를 찾아 화장지에 싸서 버리려다가 이내 관두었다.

오늘은 왠지 해충이라도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이 내키지 않을 만큼 마음이 넉넉하다. 이른 아침에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준 노래가 흥얼거려지는 것은 깊은 가을에 물든 내 가슴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가을은 참 예쁘다~ 하루하루가/코스모스 바람을 친구라고 부르네.// 가을은 참 예쁘다~ 파란 하늘이/너도나도 하늘에 구름같이 흐르네.// (중략) 나는 가을이 좋다~ 낙엽 밟으니/ 사랑하는 사람들 단풍같이 물들어'

가을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예쁜 가사가 마음에 드는 박강수의 '가을은 참 예쁘다'란 노래다. 청아한 목소리가 듣기 좋게 어울려 내 마음을 부드럽게 토닥거려 주었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겨울을 날 준비를 한다. 봄과 여름 내내 자라던 나무는 낮이 짧아지면서 자라는 것을 잠시 멈추고 수분과 영양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뭇잎을 떨어뜨릴 준비를 한다.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으로 혹은 저마다의 색깔로 의도하지 않는 시간에 스스로 스며들어가는 것이 자연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만남은 즐거움이 배가 된다. 같은 감성을 나누는 동생들은 사랑스럽고 언니들은 아름다우며 친구들은 소중하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유난히 아름답던 날 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자동차 한 대로 충주댐으로 가을 드라이브를 하였다. 하루가 다르게 물들어가는 가로수 잎이 떨어지며 만들어낸 또 다른 길에 가을 바스락거림이 온몸으로 전해오는 시간이다.

바람에 휘날리며 떨어지는 단풍잎을 보던 내 입에서 '마른나무 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잎새 하나'로 시작되는 '옛 시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느새 노래는 합창이 되어 울려 퍼졌다. '당신은 모르실거야', '찻잔', 'J에게', '가을이 오면' 등 청명한 가을 하늘에 울려 퍼지는 가을 여인들의 목소리가 파란 하늘에 잠자리 떼처럼 날아다녔다.

만남은 많은 사람들의 개성만큼이나 여러 색깔들의 성격들이 있다. 만나서 새로 산 가방 이야기나 나누면 그건 가방과의 만남이고, 새 신발 이야기를 나눴다면 나와 상관없는 상대의 새 신발과의 만남이다.

은근히 자식 자랑과 욕하면서도 끝내는 남편 자랑인 만남, 혹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상대의 이웃집 여자의 이야기는 피곤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만남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꾸깃꾸깃 구겨진 그동안의 내 소중한 시간들만이 아까워질 뿐이다. 그런 만남들은 되도록 피하고 싶지만 같은 감성을 나누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이별의 시간이 아쉬울 정도이다.

가을이 없었다면 요즘 얼마나 삭막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뉴스에서는 훈훈한 이야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 정치, 경제, 사회면이 모두 검은 구름만이 뒤덮여 있는 것 같다. 미세먼지처럼 답답한 것이 요즘 현실이다.

인간 사회에서 위로받지 못하는 것을 자연에게 위로받는 가을. 마지막까지 온몸으로 부서지며 내어주는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 산울림이 부른 노래 '청춘'이 겸손함을 불러온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피고 또 지는 꽃잎처럼….'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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