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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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부매일
  • 승인 2019.11.0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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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온 산천이 울긋불긋 곱기만 하다. 갈대와 억새가 손을 흔들고 하늘의 철새들 행진 길이 바쁘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기도 하고 플라타너스 넓은 잎에 시 한수 적어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은 날이다.

결혼 후 엄마의 자리와 아내, 사업을 하느라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다보니 한가로이 편지 한 장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초중고학생들에게 국군 장병들께 위문편지를 쓰게 했었다. 우리는 명절이나 연초, 연말이면 편지를 썼다. 한 친구가 새 농민 책 펜팔 란의 주소록을 가져와서 군인을 골라 편지를 보냈다.

얼마가 지났을까 편지 답장이 학교로 왔다. 우리는 학급 게시판 자기 번호 밑에 편지를 붙여 함께 읽었다. 글씨도 잘 썼고 문장력이 뛰어난 답장은 나를 우쭐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세 명이 똑같은 주소로 편지를 보냈는데 나한테만 답장이 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편지는 오랜 시간 오고갔다. 시시콜콜한 집안이나 친구이야기 보다는 독서 감상문을 주고받았다. 난 매월 샘터 책을 보내주었다. 아마 지금 내가 작가로 활동하는 영향은 그의 덕이 아닌가 싶다. 도서관과 친하게 했으니까.

직장 다닐 때였다. 우편배달이 올 시간이면 난 학교 교문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다른 직원들이 볼까봐 직접 편지를 받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한 선생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소포 뭉치를 주는 것이 아니던가. 종이 상자에 알밤을 넣어 보내 왔는데 비에 젖어 상자가 터져 알밤이 훤히 보이는 우편물을 받으면서 내 얼굴은 진달래 빛이 되고 말았다.

난 한때 편지 쓰는 재미로 살지 않았나 싶다. 정성들여 세로로 또는 한지에 붓글씨로 써 꽃잎을 붙여 보내기도 했으니까. 우린 글속에서 정이 들어갔다. 그는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닮았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과 음악 솔베이지의 겨울 나그네를 즐겨 듣는다고 했다.

그의 문장력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늘은 불붙는 산엘 올랐다는 표현이며. 옥수수대궁이 가을의 연가를 부르고 있더라는 이야기. 허허로운 들판의 까막까치가 낱알을 줍는 풍경을 글로 그림 그리듯 써 보내왔다.

퇴근시간에 전화가 왔다. 군인아저씨가 찾아온 거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갔다. 군복에 워커를 신은 아저씨는 작은 체구에 검은 얼굴과 엉덩이는 왜 그리 크던지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우린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를 본 후 편지 쓰는 것이 재미없었다. 한발은 족히 될 두루마리 편지를 받았다. 고향이 부산이고 어미 없이 고모 손에 자랐으며 그는 냉혈한이 되어 기자가 될 것이란 포부를 가지고 있다는 마지막 편지였다.

지점토를 배울 때이다. 난 항아리에 그를 떠올리며 점토 공예를 했다. 알밤이 쩍 벌어진 밤송이붙이고 국화와 코스모스, 해바라기 꽃을 피웠다, 물감을 칠하고 락카를 바르며 항아리 안에 혼을 불어 넣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고 이렇게 저물어가는 가을이면 솔베이지의 겨울 나그네를 들으며 항아리를 바라본다, 그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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