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문학]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과거 우리 주변에는 양철통에 시멘트를 넣어 만든 역기(力器, 바벨)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가까운 헬스장이나 주변 공원에 가면 좋은 소재로 만든 역기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역기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스포츠사 연구자들은 기원전 1800년경에 아일랜드에서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리거나 던지는 경기가 있었던 것을 기원으로 보고 있다. 그 후 기원전 6세기 후반부터 5세기에 이르러 수많은 역사(力士)가 등장하는 '힘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와 조선시대 무과시험에 무거운 돌을 들고 이동시키는 시험과목이 있었다.

국내에 서양의 역기는 한일합방(1910)이후 각 학교에 부임해 온 일본인들에 의해 규깡(球桿), 아령, 철봉운동 등이 소개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식적인 규정은 1926년 일본어규정을 그대로 번역해 적용하면서 경기에 대한 전환기를 맞이한다. 국내에서 역기(力技)를 지도한 것은 일본체조학교(현 일본체육대학)를 졸업한 서상천을 빼놓을수 없다. 그는 일본에서 학교를 마치고 1926년 서울 종로 화동 자택에 '조선체력증진법연구회'를 발족해 지도하기 시작했다.

현재와 같은 역도(力道)가 우리나라에 첫 선을 보인 것은 1928년 '역기(力技)'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가, 1930년 '중앙체육연구소'가 만들어지면서 '역도(力道)'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기술(技)이 아닌 교육적 의미로서 '도(道)'를 차용한 것이다. 당시 일본의 경우 '중량거(重量擧)'라는 명칭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역도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명칭이 분명하다.

1936년 조선역기연맹 발족이후 1940년 대한역도협회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으나, 본격적으로 역도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1946년 '조선역도연맹'이 창립되면서다. 그리고 다음해인 1947년에 우리나라 역도 사상 최초로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이처럼 역기와 역도는 해방을 전후해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렇다면 역도는 단순히 힘자랑만 하는 경기일까? 많은 스포츠전문가들은 역도는 균형잡힌 몸을 만드는데 최고의 스포츠라고 평가받고 있다. 역도는 쓰지 않는 근육이 없다. 무거운 무게를 단순 힘(strength)으로 드는 것이 아니라, 그 힘(strength)에 속도(speed)를 더한 파워(power)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많은 스포츠가 힘과 속도를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가장 많이 쓰는 동작이 '파워클린(power clean)'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짧고 폭발적인 힘을 내는 연습이 반복되는 역도의 동작들은 몸을 미(美)적으로 만드는 보디빌딩과 같은 웨이트트레이닝과는 차이가 있다.

역도는 우리나라가 첫 출전한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김성집 선수가 동메달을 안겨주면서 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안겨준 종목이었다. 그리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전병관 선수가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했고, 2000년대 들어 중흥기를 맞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장미란, 사재혁 선수의 금메달과 윤진희 선수의 은메달 등 우수한 성적으로 지금은 한국스포츠의 중심 종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관중석에서는 환호성이 울리고 일순간 고요해진다. 기합소리와 함께 선수의 두 팔이 하늘로 치솟는다. 순간 선수의 몸 근육은 팽팽해지고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심판의 성공신호에 파란불과 벨소리가 울린다. 순간 관중들과 선수는 환호성을 하고 선수의 얼굴에는 밝고 환한 미소가 지어진다. 아주 단순하지만 폭발적인 힘으로 만들어내는 드라마가 역도인 셈이다. 이러한 매력 때문일까? 최근 역도(力道)를 서양에서는 컴벳스포츠(Combat Sports)로, 동양에서는 무예(武藝)로 포함시키자는 주장이 있다.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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