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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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부매일
  • 승인 2019.11.1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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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버지와 같이 사랑방에서 기거하다가 설날 새벽 댓바람에 찬바람을 안고서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 앞동산 마루에 올랐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얀 옷에 두루마기를 입고서 들고 간 돗자리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떠오르는 붉은 해를 향해 합장을 하고 간절하게 무엇인가를 빌고 있었으나 무슨 말씀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손을 잡아 옆에 앉게 하더니 '올해는 꼭 평난(平亂) 되게 하시고, 작은형이 무사히 전쟁 마치고 살아서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어라.'고 한다. 같은 말을 몇 번인가를 되풀이하는 기도를 마치고, 이번엔 셋이서 수도 없이 절을 했다. 해돋이 풍속이 없던 시절에 처음으로 한 해맞이다. 그해에도 평난은 되지 않았고, 작은아들은 전사통지로 첫 소식을 전해왔다.

그해 가을 호적이 잘못된 큰아들이 군에 입대했다. 다음해 설날 아침에도 해맞이를 했다. 이번엔 온 가족이 다 참여했다. 새벽에 김을 올린 떡시루를 가지고 갔다. 촛불을 밝히고 형수님이 호롱불 들고 길어온 정안수도 올렸다. 발목을 덮을 정도로 밤새 눈이 많이 왔는데도 떠오르는 해는 블덩어리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모두 다 무릎 꿇고 엎드려서 아버지가 제안한 주제로 각자의 소망을 담은 소원을 빈다. 그 정성 때문인가? 그해 여름 한참 뜨거울 때 평난(休戰)이 되었다.

미망인이 되어 유복자를 난 작은 며느리는 작년 해맞이에도 떡 해놓고 온 식구가 빌었으면 살아 왔을 텐데 왜 안 하고 큰아들만 했느냐며 입만 열면 생트집이고,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식 차별로 귀결을 지어 한참씩을 퍼부어댔다. 그때 그 비단결 같은 고운 심사가 뒤틀어져 배배 꼬인 것이 구순이 지난 지금도 풀릴 줄을 모른다. 미망의 한인지 모든 게 부정적이다.

차돌쇠가 석두소리 듣기 싫어 비장한 각오로 친구들과 담쌓고 노력하더니 고학력으로 고위직에 앉아 고급두뇌 아내 만나 고층빌딩 관리하다 죽마고우 불러 사은잔치를 한다. '친구들 아니었으면 어찌 오늘의 내가 있었겠나! 돌머리 별명 불러 튼튼한 디딤돌 되어준 친구들, 정말로 고맙네! 죽어서도 잊지 않을 게.' 친구들의 해석은 제멋대로 분분하다.

가난에 찌들다 자식 버리고 팔자 고친 어미가 낳은 자식이 중복 장애아다. 가랑비 피하려다 소나기 만났다고 위로를 하는데, 평생고생 싫다면서 이듬팔자 찾아갔으니 천벌 받을 거란다. 고아는 유복한 양부모 만나 삶의 기본 갖추고 취미와 적성과 능력 따라 한 길을 걸으며 컴퓨터 산업 프로그래머로 전공 익혀 열심히 살아간다. 타인에게 비치는 장애를 휴식시간으로 생각하고 정신일도하사불성이란 말을 신조로 마음과 손을 한 곳으로만 집중한다. 정상인 못하지 않는 상당한 수준이란다. 어미가 남겨준 생존투혼이리라.

통일기원, 합격축원, 삼대독자 후손점지, 개점성황 대박서원, 당선기원 소원성취, 가족건강 무병 가정, 건강회복 가정평안, 우정불변, 우리사랑 영원무궁, 장기여행 무사귀환, 내년에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산불 좀 안 나게. 수해 안 입게. 운수대통 등을 소원하며 소지를 올리기도 한다. 이 소원들 책임질 인류의 태양은 일회성과 함량미달에 스스로가 빠진 것 추린 뒤에 정리하니 다 새나가고 남은 게 없단다. 간절한 마음 담아, 이루어질 때까지, 땀을 섞어가지고.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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