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서울 노원구 등나무 근린공원에서 열린 마들장에 참여했다. 농업관련 시민단체에서 주관하는 마들장은 프리 마켓으로서 보통의 시장과 다르다. 보통의 시장이 소비자와 생산자를 매개하여 중간 이득을 취하는 기계적 성격이 있다고 한다면 마들장은 생산자들이 생산한 물건들을 직접 들고 나와 판매에 나선다. 친환경 작물이나 공예품 위주로 생산자들이 함께 하기에 물건들에 애정과 아우라가 깃들여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훈훈한 정을 느끼게 된다. 마들장은 봄부터 11월까지 매달 한번 열리는데 흥겨운 퍼포먼스도 흥을 돋군다. 올해의 마지막인 이번엔 봉숭아 물들이기, 장아찌 담그기. 사탕수수 체험이 행인들의 발길을 끈다.

내가 속한 '임원경제 사회적 협동조합'에서도 부스 하나를 얻어 녹토미와 붉은메, 조선 녹두를 주로 놓고 판매에 나섰다. 앞의 두 개는 토종쌀이며 마지막은 토종작물이다. 이 토종 씨앗들은 우리 협동조합과 관계 깊은 '전국씨앗도서관 협의회'에서 제공했다. 협의회의 박영재 대표는 토종 씨앗들로 수원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다. 시간이 날 적마다 시골이건 산골로 돌아다니며 그곳의 노인들이 보관하고 있는 토종 씨앗들을 수거해 도서관 형태로 보관하는 한편 나눔 운동에 헌신한다. 전통의 숨결과 가치가 묻어 있는 토종 씨앗들이 자칫하면 소멸될 상황에서 그것을 지키고자하는 숭고한 뜻으로 온힘을 기울인다.

또다른 단체인 '논살림'도 협업하고 있다. 생물 다양성을 위해 지원을 하는 논살림은 비료 사용 등의 관행농으로 인해 논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고 보호, 부활하기 위한 것이다. 친환경과 토종을 위한 우리 협동조합과 뜻이 맞아 발 벗고 도와준다.

녹토미와 붉은메, 조선녹두 등이 재배된 곳은 청주 소로리 마을이다. 이 마을은 1만 3천 년 전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초의 볍씨 출토지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서유구 선생의 저서 '임원경제지'에 기반을 둔 임원경제 사회적 협동조합은 그 취지에 맞는 일을 찾던 중에 이 마을에 매력을 느꼈다. 언급한 두 단체의 협조 하에 소로리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이끌어내 그곳의 논밭 7천평을 임대할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져 그곳에 녹토미와 붉은메 외에도 북흑조, 백경조, 충북 흑미 같은 토종벼들, 노선녹두 외에도 칠기장. 부채콩, 홀애비밤콩 같은 토종작물들을 심었다. 논에선 손모내기를 했고 밭엔 볏짚 멀칭을 했으며 친환경적으로 재배되었다. 추수 후에 논밭의 둠벙과 수로를 조사한 결과 물방개, 게아재비, 잠자리 애벌레 등 수십 종의 생물들이 발견될 때의 기쁨도 누릴 수 있었다.

나는 부스 안에서 조합원들과 일을 보다가 잠깐잠깐씩 떠나 다른 부스들에 마실을 나갔다. 정성이 깃든 알뜰살뜰한 내음들이 부스마다 정겹게 고여 있다. 마들장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의 이은수 대표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신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덜크덩 덜크덩 찧는 방아. 언제나 다 찧고 밤 마실 가나.' 소로리 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꾸려온 마당극도 마들장의 한때를 빛나게 했다. 이분들과 논일을 같이 하면서 익힌 농요가 가슴을 적셔왔다. 시장은 삶과 사회가 유지되는데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시장 과잉이 되고 시장에서 사람 내음이 사라지면 곤란하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장들이 그 길로 가고 있다. 화려하지만 건조하고 기계적이다. 그 한복판에서 경제 아닌 경세제민적인 시장과 사람의 맛, 친환경과 전통, 상실될 수 없는 가치를 지키고 되살리려 노고를 아끼지 않는 분들과의 하루 속에서 정겨운 농요가 가을을 더욱 깊게 해나갔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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