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빗물 한 모금, 서늘한 공기 한 줌으로 몸뚱이를 한껏 키웠다. 세상이 궁금해 반쯤 밖으로 내밀고 시퍼런 화관까지 썼다. 해바라기하던 말쑥한 머리통은 푸른 물이 들었고 꼭꼭 싸맨 아래 밑동은 하얀 바탕색 그대로다.

땅속에서 쑥쑥 키 재기 하다가 뽑혀 온 무. 도마 위에 올린 잘생긴 조선무를 썰어본다. 달콤하고 매운 냄새가 난다. 생채는 채칼보다 칼로 썰어야 제 맛이 난다. 똑 고르게 썰고 싶지만 의지와 다르게 제각각이다.

무를 썰다 아들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놀다 온다며 나간 아들이 한밤중에 친구의 부축으로 들어왔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만취한 아들을 처음으로 보던 날 걱정으로 잠들지 못했다. 어깨가 무거웠을까. 가장은 엄마라고 누누이 얘기했지만 어린나이에 엄마와 누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아들을 뒷바라지하느라 고등학교 3년 내내 시간을 쪼개며 학사 어머니 회장으로 봉사했다. 어미 마음은 그 대가가 아들에게 가길 바랐다. 허나, 씨로 뿌려져 척박한 땅에서 햇빛과 빗물을 받아먹는 조건과 온습도를 자동 조절하는 하우스에서 기름진 포토로 잘 자란 모종하고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말수가 더 적어지고 안으로 침잠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어미는 노심초사였다.

무를 썰어 해장국을 끓이다 성인이 된 아들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났었다. 가장의 부재를 나나 아들이나 바꿀 수 없는 거라면 그 힘듦도 견뎌 내리라 믿기로 했었다.

무를 통째로 둥그렇게 썰자 뽀얀 속살 드러내며 살아온 생의 이력을 보여준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가장자리로 뻗어나간 결이 마치 나이테 같다. 채 썬 무에 고춧가루를 뿌리자 아무 저항 없이 빨갛게 색이 스며든다. 좋다 싫다 감정 내비치지 않고 시키는 대로 묵묵히 받아들이던 내 아들 같다.

순응하던 아들이 어느 날 덜 절여진 무처럼 반기를 들었다. 누름돌에 눌려진 동치미 무처럼 짊어진 삶의 무게에 버거웠던 나도 날을 세웠다. 둘 사이는 짜서 더 이상 손볼 수 없는 김치처럼 소태같이 썼다.

소금을 뿌리자 꼿꼿이 서 있던 채 썬 무에 간이 스며든다. 칼날 같았던 감정도 세월이 약이었다. 소금으로 인해 각이진 무가 수그러들 듯 냉랭함 속에서 아들과 나의 감정이 시나브로 풀어졌다. 나 힘들다고, 죽을 것 같다고 서로에게 보내는 신호였지 싶다.

나는 사람도 무 같은 사람이 좋다. 어디서나 필요하고 어떤 사람과도 잘 어울려 분위기를 띄워주기도 한다. 꼭 우리 딸아이 같다. 성격이 급하고 조바심에 미리미리 처리해야 하는 나는 후딱 버무려 내놓는 무생채 같다. 그에 비해 꾹 다문 입으로 속내를 보이지 않고 숙성시키는 김장김치처럼 느긋하게 있다가 제할 일 하는 아들. 그 사이에서 숙성된 김치였다가 생채였다가 중재자 역할을 딸이 했다. 사람 간에 불편한 사이를 소화시키는 무 같은 사람.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도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닌가.

무는 익히지 않으면 아삭하지만 열을 가하면 부드럽다. 늘 곁에 있지만 대접받는 채소는 아니다. 옆에 두고도 늘 무심했던 존재이나 곁에 있어서 고마운 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자신으로 하여금 주위를 더 유익하게 하는 무 같은 사람이 세상을 살맛나게 만든다.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리며 시원한 맛을 내주는 무도 그렇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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