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길가의 은행잎이 어느새 짙은 노오란 옷으로 갈아입고 대지위에 뒹구는 낙엽을 보면서 지나온 삶의 여정을 되새겨 보곤한다. 누구나 삶의 여정에 있어 행복해지기를 소원한다. 그런데 한 가정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도 작은 것에 감사하고, 충성하며, 소중히 여길 때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삶속에 결코 사소한 것은 없다.

핸리 포드가 자동차 왕으로 명성을 날릴 때 한 시골학교 여교사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았다.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 피아노 한 대를 놓고 싶은데 1천 달러를 기증해 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포드는 늘 그렇듯이 의례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 10센트만 달랑 보내주었다.

그러나 이를 받은 여교사는 낙심하지 않았다. '1천달러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10센트로 뭔가 의미있는 것을 할 수 있을 거야'하며 밤새 고민을 했다. 다음날 그녀는 10센트로 땅콩 종자를 구입했다. 그러고는 학생들과 땅콩농사를 시작했다. 구슬땀을 흘러가며 땅콩 농사를 지은 학생들과 여교사는 잘 여문 땅콩들을 수확해 감사의 편지와 함께 핸리포드에게 보냈다.

이를 받은 핸리포드는 크게 감동을 받아 그 학교에 1만달러를 기부했다. 1천 달러의 1만분의 1인 10센트를 받고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감사한 여교사의 마음씨가 결국 10센트의 10만배되는 1만달러라는 수확을 가져온 것이다. 역시 작은 감사 속에는 더 큰 감사를 만들어 내는 기적이 숨어 있다.

2년전 두란노에서 주관한 제천 아버지학교를 다닌적 있다. 교육과정 중에서 지금도 잊지 못하는 과제가 있었다. 아내에게 감사의 편지쓰기와 아내자랑 20가지를 적어오라는 과제였다. 아니, 아내가 뭐 잘한 것이 있어야지, 그것도 무려 20가지를 써라.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러나 과제를 안할 수는 없어 작은 일에서부터 조심스럽게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아내의 하루의 생활을 살펴보니 참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식사준비는 물론 청소, 출근하는 나의 일 돕기, 두 손주들 학교와 유치원 보내기 준비 등 한 두 가지가 아니였다. 그러고나서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면서 우리가정의 안정된 생활이 거저 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내의 수고로움이 젖어 있기에 작은 행복의 꽃이 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먼지 묻은 가족 앨범을 꺼내어 보게 되었다. 아내와의 결혼사진, 검정색 교복에 단발머리를 한 아내의 청순한 여고시절 사진을 보니 더없이 미안하고 감사하기 그지없다. 물론 감사한다고 당장 환경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감사할 때 우리 자신이 바뀐다. 마음이 풍요로워지며 인생을 보는 시각과 깊이가 달라진다.

그렇다. 사람이 스스로 속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받는 사랑도, 대우도 당연하고 내가 하는 일도, 내가 건강한 것도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당연한 것을 감사하기 시작하면 고마운 마음은 더욱 커지고 또 하나의 감사의 열매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다시금 나의 인생, 나의 가족들에게, 주변 친구와 지인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오늘따라 어떤 현수막에 '억수로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문구가 가슴을 억수로 저리어 오게 한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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