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나는 나(裸)를 참으로 싫어한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는 뭐가 그리 소중했는지 내 얼굴만 내놓고 포대기로 포옥 싸서 아랫목에 뉘어놓고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사립문에 인줄까지 쳐놓고서야 안심이 되는지 제게 첫 젖을 물리시며 산신할머니에게 제발 튼실하게만 자라게 해달라고 간절히 심원하셨다는 말씀을 여남은이나 더 먹은 누님에게서 둘째형님의 전사통지서를 받았을 때 처음 들었다. 그런 연유인지 지금껏 어디에서도 몽땅 드러내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나만 그런 줄 알았었는데, 죽은 사람들도 신상 떨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지 후손들이 대를 이어 조상의 비밀을 감추려고 무진의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누구나 꼭꼭 감추고 싶은 것 한두 가지 씩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디 그뿐인가? 크고 작은 어떤 것도 보여 지길 싫어하는 이는 죽음으로써 덮어버리기도 하지만, 질질 끌리는 긴 꼬리는 밟히고 밟혀도 사려지질 않는다.

그러고 보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 틀린 게 아니고, 죄 없는 자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는 말 거역할 이 없으며, 남의 허물벗기는 일 좋아하다 제 속 뒤집히는 줄 모른다는 말 부정할 이도 없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고, 방귀 뀐 놈이 성내며, 제 똥 구린 줄 모르고, 뭐 낀 놈이 성낸다는 적반하장의 속담에서 파렴치에 몰염치에다 후안무치한 이들을 개나 변에 비유함을 멈추지 않는 것은 어쩌면 개똥이가 아직 살아있어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의 허물은 양파 같아서 아무리 벗기고 벗겨도 끝이 없음을 아주 잘 알면서도 지각이 없어서 그런지 자기 허물 벗겨질 것은 전혀 안중에도 없으니 남의 허물 벗겨다가 자기 허물 불리고 있음을 어찌 알겠는가?

생전에 미리 다 털어놔서 그런지 성자들의 신상을 들먹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얼마일줄 모르는 허물이 존경과 숭배와 은총과 거룩함에 감히 도전하여 흠집 낼 수 없음이리라.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남의 신수 잘 보고 질러가 거액을 챙기면서도 자기의 한치 앞 급살명운은 모르니 남모르게 쌓은 재물 무주공산 되고, 내 신상은 저예망에 갇혀 해방될 차례를 기다려도 소식은 감감하다. 감추고 숨기려고 그렇게도 무진 애를 썼는데 미물이라고 낯 새와 밤 쥐를 방기했나보다.

영장들은 선악과로 부끄러움을 알아서 그런지 무슨 일이 생기면 공사 구분없이 우선에 먼저 감추려는 타성이 있다. 심지어는 심각한 질병까지도 그 후렴조치가 두려워 벙어리 냉가슴으로 사리다가 냄비속의 개구리가 되고 만다.

남의 신상에 먹칠하느라 밤새는 줄 모르다가 자신에게 먹물 튀어 분칠 당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보고 들으며 부딪치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그 분탕을 뒤집어쓰기가 일쑤다. 결말은 머지않은데도 근시안이라 자기 키를 벗어나지 못하니 자신의 사상누각에 깔리고 있음을 알 리가 없다. 바로 내가 그 주인공일 수도 있음을 명심하고, 부끄러움 알거든 결코 늦지 않았으니 자신의 본성 잘 가꿔 비난의 시선 롤 모델로 돌려보자. 사람은 열 번 아니라 백번도 거듭날 수 있다.

모르고 한 짓은 용서될 수 있어도 뻔히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음은 자기 자신과 주변을 기만한 것이니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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