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학수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어느덧 입동을 지나 늦가을의 만추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김장철에 접어 들었다.

추위가 일찍 찾아오는 중부 산간지방에서 시작된 김장이 점차 남부지방으로까지 차례로 이어진다. 마치 가을 산에 단풍이 물드는 순서와 흡사하다.

'김장'이라는 말 속에는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어릴적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자란 필자에게는 김장에 대한 남다른 추억이 있다. 김장은 산골마을에서 본격적인 겨울준비에 들어가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아주 중요한 연례행사였다. 그때는 요즘처럼 절임배추라는 것이 없던 시기라 김장하는 날이 정해지면 어머니는 몇 날 며칠이고 김장 준비에 매달렸다. 저녁마다 마늘과 생강을 까고, 파를 다듬고, 무채를 썰고, 밀가루 풀을 쑤어 고춧가루와 버무려 양념을 만드는 등 집안 구석구석 스며든 마늘과 생강, 고춧가루의 알싸한 매운맛이 김장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리곤 했다.

막상 김장하는 날이 되면 넓은 마당에 자리 잡고 앉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로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물론 마당 한 구석 가마솥단지에서는 된장을 듬뿍 넣은 돼지고기 수육이 김장김치를 기다리며 맛있게 삶아지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한마디로 어릴 적 산골마을의 김장하는 날은 마치 동네 잔칫날과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예전과 같은 김장철의 아름다운 모습은 기억속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돼 버렸다. 실제로 급속한 고령화로 농촌의 활력은 잃어 버린지 오래고, 바쁜 도시생활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김장 대신 간편하게 사 먹을 수 있는 '포장김치'를 더 많이 찾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포족' 얼핏 들으면 특정 지명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한 이 말은 '김장을 포기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신조어이다. 더구나 올해는 태풍 등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배추가격이 예년에 비해 많이 올랐다. 실제로 올해 가을배추 재배면적은 평년보다 17% 감소한 1만968㏊로, 역대 최소 면적을 기록했으며 한 포기 가격은 4천700원 선으로, 평년보다 2배로 뛰어 배추가 이른바 '금추'가 되었다니 김장을 하는 게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정부가 추산하는 올해 김장 예산은 4인 가구 기준 22포기에 30만원 내외로 가뜩이나 경기 불황속에 움추려든 가계소비지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포장김치가 주는 편리함에 익숙한 시대이지만 그래도 월동준비의 1순위로 '김장'을 꼽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 적어도 어릴적 시골에서 경험했던 김장의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있는 50, 60대들은 말이다.

김장철을 맞아 농협에서는 배추, 무 초특가 행사를 전국 곳곳에서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농협중앙회를 비롯한 전국의 각 지역농협 등에서는 추운 겨울을 걱정하는 혼자 사시는 독거노인, 불우이웃 등을 위해 사랑의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를 열어 '따뜻한 겨울나기' 이웃사랑 나눔활동도 실천하고 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월동준비를 시작하는 김장철이다. '김장'이 겨울 먹거리를 준비하는 연례행사로서의 단순한 의미를 넘어 '이웃과 하나가 되고 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문화'로서 소중히 간직해야 할 우리의 전통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김학수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br>
김학수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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