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규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25년만에 다시 찾은 부석사다. 멀지않은 데서 아는 사람이 친환경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터라 더욱 반갑다.

천왕문을 지나 미얀마에서 온 스님들에 합장하고, 고개가 자동으로 숙여지는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회전문에 들어서니 극락정토가 눈앞에 나타난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 했던 계단 양 옆 돌축대에 암벽등반하는 클라이머처럼 찰싹 붙어있던 빨간 담쟁이 덩굴은 감동의 예령에 불과했다.

미술평론가 유홍준은 부석사를 가리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이라 평했고, 200인의 건축가들은 '가장 잘 지은 고건축'으로 선정했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최순우 선생은 생전에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 했다."고 했고,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를 '국보0호'로 지정하자."고 까지 했다.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은 안양루에 올라 발아래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그림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예전에는 누구나 안양루에 올라 한눈에 들어오는 장쾌한 경관을 실컷 감상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출입금지로 들어가지 못하고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내려다보는 탁트인 경치를 좋아하지만 가끔은 예외인 곳도 있다. 부석사가 그러하다.

이 절의 안대문인 회전문 옆 툇마루에 앉아 올려다보는 삼층쌍석탑·범종각·응향각·안양루·무량수전으로 이어지는 풍광은, 천상에 오르는 계단처럼 황홀하다. 소리도 지를 수 없는 '목메인 감탄'에 빠지고 만다.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은, 1972년에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 상량문의 기록(13세기 이전에 건립)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왔으나, 지금은 목조 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건물은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으로 건립연대(1308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유명 사찰에는 으레 창건설화가 있기 마련인데 부석사에도 애틋한 창건신화가 있다. 의상이 당나라 유학길에 머물렀던 신도의 딸 선묘 낭자는 의상을 사모한 나머지, 이룰 수 없는 사랑임에도 죽어서까지 의상을 돕고 지켰다. 그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기리기위한 선묘각이 무량수전 뒤편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절을 찾을 때마다 법당에 들어가 벽화며 천장 등을 찬찬히 살폈듯이 아미타불을 모신 무량수전 내부를 한바퀴 돌아봤다.

무량수전 아미타불(국보 제45호)은 특이하게도 건물의 정면이 아닌 동쪽의 좌측면을 향하고 있다. 안내서를 보니 극락왕생자를 맞이하는 형상이라고 한다.

아미타불이 바라보는 동쪽 언덕에는 삼층석탑(보물 제249호)이 있고, 석탑을 돌아 숲속 오솔길을 오르면 의상대사의 진영을 모신 조사당(국보 제19호)에 이른다.

조사당 벽면에 그려져 국보 제46호로 지정된 벽화 6점은 벽면 전체를 그대로 떼어 수리중인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어 이번에도 인연이 닿지를 않았다.

201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7곳의 산사 중 한 곳인 이곳은 국보 6점, 보물 3점을 간직하고 있는 화엄 불교의 보고(寶庫)다.

마침 수십명의 70대 중반 의사분들이 졸업(서울대) 50주년 기념 여행을 오셨다. 밝고 고운 명의들의 미소가 천년의 고찰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김규완 충북중앙도서관장
김규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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