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성진 사회부장

한류스타 한 명이 또 우리 곁을 떠났다. 연예이란 직업을 떠나 20대 청춘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데 큰 슬픔이 밀려온다. 지난 24일 걸그룹 '카라' 출신의 구하라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제 겨우 28세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현장에서는 그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가 발견됐다고 한다. 지난 10월에는 걸그룹 'f(x)' 출신 배우 설리(25)가 세상을 등졌다. 고인들은 생전에 절친이었다. 설리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불과 41일 만에 구하라마저 하늘로 떠나면서 그야말로 연예계는 초상집이다. 설리 비보 후 구하라는 "언니가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게"라며 굳은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구하라도 끝내 생을 마감했다. 청춘의 꽃들이 채 활짝 피기도 전에 져버린 까닭은 연예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다. 직업 연예인에게 '공인(公人)'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씌워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다시피 관찰하는 것이 과연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 '국민의 알권리'라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그저 연예인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공공연히 침해하는 것은 아닐까. 악성 댓글은 고인들의 인격을 무참히 짓밟던 말발굽이었다.

날카로운 꼬챙이가 돼 심장을 찌르는 흉기로 작동했다. 미쳐 날뛰는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구하라는 때로는 호소하고, 때로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로서는 살려달라는 애원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이 온전히 악성 댓글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악성 댓글이 피해자들을 피폐하게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악성 댓글을 접한 피해자들은 대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관심'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다가 도를 넘었다고 여긴다. 이쯤부터는 상황이 심각해진다. "왜 내가 욕을 먹지"에서 "내가 잘못해서 그런가"로 악성 댓글의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나의 잘못으로 도치한다. 점차 드러나는 우울증이 심각 단계로 접어들면 그 위험성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다. 목소리를 들은 적도, 만난 적도, 인연도 없는 누군가가 매일 인격살인에 가까운 저주의 글을 퍼붓는다면 그 누가 버틸 수 있을까. '얼굴없는 살인자'와 다르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악성 댓글은 자신만을 공격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가족들을 끌어들인다. 나 때문에 가족까지 피해를 본다는 자책이 떠나지 않는다. 이런 무차별적인 공격은 여성 연예인에게 더욱 가혹하다. 여성 연예인들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성적 만족의 도구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실시간 소통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악성 댓글은 더욱 힘을 발휘한다.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하기 전에는 악성 댓글은 생각지도 못했다. 온라인이 현실화되면서 서서히 고개를 든 악성 댓글은 이제 연예인들의 공공의 적이 됐다.

수년 전부터는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등장하면서 악성 댓글은 폭발적인 위력으로 다가왔다. 악성 댓글도 관심의 표현이라는 시각이 있다. 악성 댓글이 연예인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관문이라고도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도 조언한다. 관심은 기본적으로 애정이 깔려 있어야 한다. 애정없는 관심은 무의미하다. 무의미한 글은 관성적으로 상처를 유발한다. 글이 넘치는 세상이다. 그저 생각없이 몇줄 쓴 글이 누군가에게 아픔을 줄 수도 있다. 글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박성진 사회부장
박성진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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