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민투표가 열렸다. 신축아파트여서 이것저것 결정할 게 많은지라 종종 투표가 열린다. 딴엔 소수를 위한 삶을 산다지만 다수에 익숙한지라 대체로 다수의 편에서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이번 투표는 내심 신경이 쓰였다. 그동안 입주자 대표회의가 내건 사안이 거의 통과되는 분위기 속에 제시된 안건이 '아파트 출입구 스크린도어 설치 찬반투표'였기 때문이다. 스크린도어를 설치해서 외부인 특히, 배달 오토바이의 지상 출입을 막겠다는 것이다. 배달 오토바이들이 지하주차장 출입구가 아닌 지상 출입구의 인도를 가로지르며 다니느라 보행자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위험한 상황을 목격도 했던지라 이유를 이해했지만 스크린도어 설치가 그 대안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최근 배달원 직업 체험을 한 전직 아나운서의 유튜브 채널이 화제가 되면서 잊었던 이 투표가 떠올랐다. 지역사회복지 전공자로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는 소심한 사회복지사로서, 내가 사는 아파트에 담장이 쳐지는 걸 원치 않았다. 50세대가 하나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처음 보는 사람이 있고 어색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옆집이나 일부 이웃들과는 소소한 농담을 건네는 사이로 발전했지만 열 번을 만나도 열 번을 먼저 인사해서 얻은 결과다. 이렇게 어려운 이웃과의 삶에 스크린도어라는 장치마저 더해지면 안 그래도 휑한 주변에서 고립된 느낌이 들 것 같았다.

배달원 체험에 나선 유튜버는 고급아파트에서 여러 장벽을 넘어야 했다. 입주민 전용카드가 있어야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곳에서 결국 짐을 메고 힘들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누구도 그를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 그 상황이 안타까웠다. 배달원이라는 직업의 고충이 그대로 느껴졌고 방송 후 여러 논란이 있는 모양새다. 비단 그 아파트 뿐일까. 이웃 아파트가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면서 우리 아파트도 안건이 올라온 것 같았다. 무슨 효과가 있을까. 경계(境界)를 세운다는 건 어떠한 기준에 의해 분간하는 것을 말한다. 스크린도어의 경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입주민의 안전을 위해 취해진 이런 적극적 조치는 경계를 중심으로 영역 안에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한다. 이 안건이 단순히 배달원만을 대상으로 한 것 같지는 않아서 하는 말이다.

처음 안건을 들었을 때 이렇게 폐쇄적일 필요가 있나 싶었다. 지금의 사람들은 자기 것을 지키려 필요하다면 담을 세우는 것 같았다. 그 담을 무너뜨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나로서는 애초에 세워지지 않길 바랐다. 다행히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안건은 부결되었다. 안건 부결 공지를 본 후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직 괜찮다. 담을 세우려는 사람보다 문을 열어 두려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다행히 이런저런 논란 이후 지상으로 출입하는 오토바이 배달원도 보지 못했다.

우리 삶은 경계(境界)가 많다. 내 영역 안의 사람들은 존중받아 마땅하고 그들에게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영역 밖의 사람들에겐 호의적이지 않다. 그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내부 구성원으로서 누리는 권리를 외부인은 향유 할 자격이 없다고 보면서 이런 불평등한 상황을 평등하다고 여기는 모순에 빠진다. 누군가를 배제하면서 이루는 평등은 착각일뿐이다. 이웃들이 보면 과하다 흉볼 수도 있을 만큼 아파트 스크린도어 하나에 너무 큰 의미를 담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사실 부결된 안건을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경계의 또 다른 뜻은 '인과의 이치에 따라 스스로 받는 과보'果報)'란 뜻이다. 만약 스크린도어로 경계를 세웠다면 결과는 낙과(樂果)였을까. 고과(苦果)였을까.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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