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칼럼] 이민우

누구나 마음속에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있다. 그 향수는 첫사랑, 그리움, 아련함, 청춘,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 가슴을 저미었던 사건들이 서로 연상되면서 다가오곤 하며, 항상 그리워 한다.

해마다 연말을 맞지만 올해는 유달리 조용하다. 세월의 흐름 때문일까?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설렘'이 있음을 느낀다.

첫사랑의 설렘, 첫눈에 대한 설렘, 여행 가기 전의 설렘, 입학전의 설렘, 어렸을 적 소풍 가기 전날 밤의 설렘, 입사전의 설렘, 첫 집 마련을 하고 입주를 앞둔 주부와 온 식구들의 설렘 등으로 무수히 많은 설렘을 가지고 산다 . 특별히 12월은 많은 설렘의 '정점'에 있던 달이다. 크리스마스를 통해 수많은 연인들이 작은 설렘 속에 만남과 약속을 하며, 마음 담긴 선물을 통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즐거운 설렘이 있었다. 그 중 가장 많이 회고 되는 것이 '첫사랑'과 '첫눈'이다

오스트리아 음악가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는 키가 152㎝에 배가 불룩하고 고도 근시로 인해 두꺼운 안경을 썼다. 친구는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다 할 로맨스는 없었다. 더 오래 살았더라면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31세에 요절했기에 카놀리네를 짝사랑한 것을 제외하면 그가 17세에 만든 첫 미사곡에 노래를 불렀던 테레제가 그의 유일한 사랑이다. 한때는 그녀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가정을 꾸릴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빵집 남자와 결혼했다.

당시 새로 제정된 결혼법에는 시민들은 '가족을 부양할 충분한 재력이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슈베르트는 번듯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고 그렇게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 테레제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됐다. 이 일에 대해 훗날 슈베르트는 친구인 휘텐브레너에게 털어놓았는데 "누군가를 몹시 사랑한 적이 있네. 내가 작곡한 미사곡에서 소프라노를 노래했는데 어찌나 아름답게 깊은 감정을 담아 불렀는지 몰라. 그녀와 결혼할 생각을 3년 동안 했네. 그런데 괜찮은 일자리를 얻지 못했어. 그러자 그녀는 부모님 뜻에 따라 다른 남자와 결혼했고 나는 몹시 상처받았지. 지금도 그녀를 사랑해." 슈베르트는 그녀를 생각하며 만든 곡을 포함해 가곡 17개가 담긴 노래집을 테레제의 동생에게 넘겨줬고, 그 이후 이 곡들이 한데 엮여 '테레제 그로프의 노래집'이 됐다.

세계적인 독일 작가이면서 철학자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는 74세 때 마리엔바트의 온천지에서 18세 소녀 울리케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올리케에 대한 열렬한 연정은 그가 쓴 연애시 '마리엔바트의 비가'에서 엿볼 수 있다. 괴테는 15세 소녀와의 풋풋한 첫사랑부터 74세의 노인이 되어 만난 18세 소녀와의 사모까지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 그 자체에 충실하면서 사랑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 힘이 괴테 인생의 원천이 됐던 것이다. 괴테는 죽기 한 달 전까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시를 썼다. "인간은 육체가 늙고 머리가 세어도 영혼은 나이를 먹지않는 법이다." 영원히 늙지 않는 그의 명작들은 죽는 순간까지 이성을 사랑하려했던 정열적인 힘에 있지 않았을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바로 괴테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일 문학의 최고봉을 상징하는 괴테의 생애를 돌아보면 '거인'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80년이 넘는 긴 생애 동안 활동하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베스트셀러에서 <파우스트> 같은 대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도 폭넓은 작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첫눈이 내리는 겨울은 설렘 그 자체다. 기다림과 약속의 밀어(密語)인양 우리의 가슴을 들뜨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첫눈이 내리면 설레는 이유는 거기에 사랑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말이 '첫눈 오는 날 만나자'다. 하늘에서 하얀 눈발이 내리는 날 만나자는 이 낭만적 약속을 한두 번쯤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로 인해 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을 울리고 웃겼던지 기억이 새롭다. 사라진 우리의 설렘을 회복하면 참 좋겠다. 작은 것 하나에도 감격해하고, 별거 아닌 변화와 장식에도 가슴 설레며 살아가는 아날로그 감성이 다시 살아나면 얼마나 좋을까.

이민우 부국장겸 사회부장
이민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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