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광길 농협구례교육원 부원장

지난 10월25일 정부가 미래 WTO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했다. 이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초대형 자유무역협정인 '역내 포괄 경제 동반자 협정(RCEP)'이 타결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농업인들은 '우리를 두 번 죽이는 일이며, 이제는 정말 우리 농업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게 됐다'고 망연자실하며 울분을 토로했다.

정부는 개도국 지위 포기를 발표하면서 쌀 등 민감 분야 보호, 피해보전 대책 마련, 농업 경쟁력 제고 대책 추진이라는 3대 정책 방향을 제시했지만 농업인들은 개도국 포기와 관계없이 기존에 추진하던 정책들이라며 포기 철회와 실질적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농업 농촌 전문 민간 연구 기관인 GS&J는 '새 WTO 협상이 시작돼 당사국간 협의를 거쳐 우리나라가 의무를 이행하는 시점은 빨라야 6~7년 뒤라, 당장 농업 분야에 미치는 악영향은 없는 셈'이라고 했지만 농업인들은 "계속되는 정부의 농업 홀대에 더는 농정 방향을 신뢰 할 수 없다"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1995년 WTO 출범 당시 한국은 농업·공업 간 불균형 경제 성장 정책을 내세워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으나 개도국 지위 포기 시점에 이를 때까지 어느 역대 정부가 개도국 지위를 활용해 농업·농촌·농업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는지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당시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의 95.7% 수준이었는데 지난해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의 65.5% 수준인 4천207만원으로 20년전보다 도·농간 소득 격차는 더 심화 되었다. 또한 곡물 자급율은 같은 기간 동안 29.1%에서 21.7%로 떨어져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으로 우리의 식량안보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더불어 한·중 FTA 체결에 따른 농가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2017년부터 매년 1천억원씩 10년간 1조원의 기금을 마련하기로 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정부의 무관심과 기업의 외면으로 올해 현재 595억원으로 목표치 3천억원의 20%에 그쳐 협치는 구호에 머물고 있다.

이제 정부는 230만 농업인들에게 더 이상 양치기 소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할 시점이다. 농가소득 안정과 식량 주권, 농업의 공익적 기능, 지방소멸,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노무현 정부시절 9%에 가까웠으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선 3%선까지 떨어졌던 농업예산을 농업인 인구 비중에 맞춰 4.6%대로 상향 편성해야 할 것이다.

농업예산 증대는 개도국 지위 포기로 들끓는 농심에 조그마한 희망의 불씨가 되리라 생각된다. WTO 개도국 지위 포기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소용돌이라면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농업·농촌의 발전 기회로 삼아 대한민국의 농업이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한데 모아야 할 것이다.

농업예산 증대는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요구하는 공익형 직불제 예산을 3조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에 부응하는 것이며, 농민단체가 요구한 공익형 직불제 도입, 안정적인 농업 재정지원, 인력지원·소득보장, 수요 확대 및 경영 안정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특별위원회 설치 등 요구사항들에 대한 상생과 소통의 창구가 되리라 기대한다.

이광길 농협구례교육원 부원장
이광길 농협구례교육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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