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1. 당신의 잠자는 벤치는 어디요?

새벽에 키르키스탄 수도 두샨베에 도착한 탓에 아침식사를 하고 피곤해서 다시 잤다. 오후 2시 경이 되어서 점심도 먹을 겸 루다키 공원(rudaki park)로 나갔다. 타지키스탄 시조 격인 이스마일 소모니 동상도 있다. 구글맵에서 2.4km. 온통 가로수 길이다.

우리나라 가로수 두 세배 크기의 나무가 공원까지 끝없이 뻗어 있고 트랩과 버스가 지나다녔다. 대로 주변에는 분수대와 작은 정원들이 잘 가꾸어져 있있다. 사람들은 벤치에 앉아 쉬거나 담소를 즐겼다. 한 나라의 수도 한 복판의 느낌은 아니었다. 걸어 가는 길 옆으로 대통령 집무실과 관공서 건물 같은 것이 보이고 은행이나 대형 상가들도 눈에 띄었다.

여자들의 옷 차림은 무슬림 스타일로 인접한 우즈베키스탄이랑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공원 한바퀴를 돌았다. 그런데 점심 먹은 비프가 체한 것 같아 콜라 한 병을 공원에서 사 먹었는데도 영 속이 더부룩 했다. 맥주 파는 곳을 찾았다.

이곳은 이슬람 국가라 술 파는 곳이 대형 슈퍼에 정해져 있었다. 밀러 2병이랑 저녁에 먹을 캔 1개, 우리나라 돈으로 5천 원 정도. 그냥 가게 앞 나무 벤치에 앉아 병나발을 불었다. 어떤 남자가 지나 가면서 엄지척도 해 주었다. 우쭐함 반, 자유로움 반,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 보면서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빡빡이 머리에 두꺼운 검정 외투를 입은 50대 남성이 다가와서 "중국 사람이요?"하고 말을 걸있다. 자기는 한국에 가본 적 있다며 서울, 부산은 좋았다고 했다. 나 보고 잠자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호스텔! 얼마냐고 해서 10불에서 15불 한다고 했더니 비싸다며 자기는 불가리아 사람인데 지금 일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란다. 그러면서 자기는 지금 길거리에서 잔다고 말했다. 노숙자였다. 인사를 하고 뒤돌아 가는 양손에는 짐이 한가득 들려 있었다. 다시 맥주를 한모금 마시는데 갑자기 웃음이 떠져 나왔다. 저 인간이 설마 나를. 그는 나를 자기 같은 노숙자로 본 것이다. 푸하하하!

이상봉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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