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을 회피하려 말꼬리를 돌림

뉴스를 시청하다가 한 남자가 목이 쉰 목소리로 큰 소리를 지르며 펑펑 우는 장면을 보았다. 그 이유인 즉, 한 아이의 아버지인 이 사람은 얼마 전 학교앞 건널목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으리라는 결심과 함께 학교앞 안전지역에 CCTV카메라를 설치해달라는 청원을 냈다. 이를 국회에서 의결처리하면 앞으로 이러한 불행이 재발되는 확률은 분명 낮아질 것이다. 허나 이날 국회에서는 이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이러한 절실한, 아이들의 생명이 걸린 법안이 선거구 조정 등 정치현안 관계로 말이다.

의회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대한민국에서 법안을 심의 제정하는 것은 국회의 임무다. 이러한 임무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이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는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불행한 한 국민의 진실한 요구, 그것도 너무나 타당하고 필요한 일을 요구했음에도 이러한 일이 국회에서 정상적으로 처리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국회는 과연 그 존립의 목적이 무엇일까 라는 의문을 던져버릴 수 없었다.

그 아버지가 그날 국회에서 정당의 책임자가 인터뷰를 한다는 곳으로 달려가 이유를 물었다. 대답이 걸작이다. 원래는 별도로 법안처리를 하려고 했지만 나머지 의결할 법안이 너무나 심각한 것인지라 이를 처리하지 못했다는 궁색한 이유만 있었다. 국민의 질문에 정정당당하게 대답할 수 없는 국회. 국민의 간단하지만 절실한 요구조차 처리할 수 없는 국회. 국회는 왜 필요할까? 부끄러워하는 국회의원의 눈빛을 보며, 『孟子(맹자)』에 나오는 고사가 생각났다.

孟子가 齊宣王(제선왕)에게 "어떤 사람이 楚國(초국)으로 가려고 그의 처자식을 그의 친구에게 보살펴달라고 부탁하였다가, 돌아와 보니 자신의 처자식이 계속 추위와 허기에 시달렸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말씀해보시겠습니까?"라고 질문하였다. 齊宣王이 "그와 절교해야지"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孟子가 "법을 관장하는 관원이 자신의 부하도 관리할 수 없다면 또한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宣王이 "그의 직위를 거두어야지"라고 대답하였다. 孟子가 이어서 "국가의 政事가 어지러워지고,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편안하게 살 수 없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이는 齊宣王의 急所(급소)를 찌르는 말인지라 宣王이 "좌우를 돌아본 뒤 다른 말을 하였다(顧左右而言他)."

당당함이 사라진 정치는 명분 없는 정치라는 것과 다름 아니다. 적어도 민생과 관련된 것과 정치적 현안과는 별도로 처리될 수 있는 지혜라도 모아야 되지 않을까? 황당할 수도 있지만, 민생법안 처리율이 50% 이하면 국회의원의 세비를 50% 삭감하는 것은 어떨까? 더 이상 齊宣王의 눈빛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 아버지의 애끓는 소청이 대통령령으로라도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배득렬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배득렬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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