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칼럼] 박상준 논설고문

나랏일에 바쁜 국회의원들을 자주 볼 때마다 총선이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그들을 만난다. 얼마전 가을비가 쏟아지던 저녁, 청주근교 후배의 집에서 마을 음악회 겸 집들이행사가 열렸다. 30여명의 손님들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 의외의 얼굴이 보였다. 청주에 지역구를 둔 4선 국회의원이었다. 빗속에도 꼼짝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던 그는 행사 말미에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제가 왜 이 자리에 섰는지 아시겠죠?"라는 말문을 연 뒤 또 한 번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인사말을 하는 내내 그의 얼굴엔 절박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과연 그는 다섯 번 째 금배지를 달 수 있을까.

총선이 내년 4월이다. 역산하면 5개월밖에 안 남았다. 하지만 본선보다 공천권이 달린 예선전이 발등의 불이 됐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경쟁적으로 인적쇄신을 선언하고 나섰다.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진부한 정당이 40%에 달하는 중도층의 마음을 살 수 없다. 총선 물갈이는 국민의 열망이다. 여당은 총선승리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경제실정(失政)과 조국게이트를 거치면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때에 비해 반토막 났다. 여권에 대한 민심이반 현상이 뚜렷하다. 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유리한 방식으로 '게임의 룰'을 바꾸려는 것은 '20년 장기집권'의 포석을 만들기 위해서다. 공천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총선이후를 장담하기 힘들다. 민주당은 최근 현역의원 평가에서 하위 20%에 속한 의원에게 사전 통보키로 했다. 낙제점을 받은 의원은 경선을 하나마다. 알아서 진퇴를 판단하라는 메시지다.

한국당은 더 심각하다. 이 정권의 국정난맥상에 반사이익은 커녕 비호감도가 북한 김정은과 같은 62%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치력에 한계를 보인 황교안 대표가 몸이 상할 만큼 단식투쟁을 했지만 '반짝 관심'만 모았을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나마 황 대표가 고강도 쇄신을 예고한 것은 주목할 만 하다. 현역 의원을 최대 50% 이상 컷오프 하는 방안까지 검토한다고 한다. 환골탈태(換骨奪胎), 육참골단(肉斬骨斷)이라는 살벌한 한자숙어가 등장했다, 이런 충격요법을 정말 실행에 옮긴다면 한국당은 달리 보일 터다. 상당수 의원들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할 시점이다.

특히 붙박이처럼 '장기집권'하고 있는 청주 다선의원들은 폭풍처럼 거센 개혁공천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민주당 변재일(청원)·오제세(서원) 의원은 5선에 도전한다. 한국당 정우택(상당)의원은 4선을 노린다. 강산이 거의 두 번 바뀔 때 까지 군림하는 동안 어느덧 칠순 안팎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치적인 욕망을 드러낸다. 다선과 경험, 권력에 대한 의지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경륜이 풍부한 정치인을 보유한 것은 지역의 자산이다. 하지만 다선의원들이 여의도에서 얼마나 존재감을 드러냈는지 그리고 지역발전에 기여했는지 여부는 따져봐야 한다. 조국 사태로 나라가 분열됐지만 청와대에 직언하거나 입바른 소리를 했다는 말을 듣지못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KTX세종역 신설 논란을 증폭시켰을 때 시민사회단체는 반발했지만 이들 의원들은 침묵하거나 외면했다. 이들은 특권을 가진만큼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고비용 저효율'로 늘 비판의 대상이다. 한해 1억3천700만원의 세비를 받고 보좌관이 7명이며 45평대의 사무실을 배정받는 등 금배지를 달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무려 200여 가지에 달한다. 국회의원 1인당 7억 원의 이상의 혈세가 투입된다. 그들에게 이런 예우를 해주는 것은 유권자의 뜻을 받들어 국가와 지역발전에 매진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권자가 상전대우를 받는 것은 임기 4년간 총선에 즈음한 4개월이다. 나머지 44개월은 온갖 특혜를 누리다가 선거 때가 되면 얼굴을 보인다. 이러니 '공천혁신'이 박수받는다. 공천에서 못 거르면 유권자들이 퇴출시켜야 한다. 세대교체, 인물교체는 선거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돼온 자연스런 일이다. 세월이 전해주는 이런 메시지를 읽지 못하고 자리에 연연하다보면 떠밀려 나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떠날 때를 아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법이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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