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와 훈민정음
직지와 훈민정음
  • 중부매일
  • 승인 2019.12.0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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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최시선 수필가·광혜원고 교장

가끔 공연을 보기 위해 청주예술의전당에 가곤 한다. 어쩌다가 일찍 도착하는 날이면 주위를 둘러본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바람은 스산하게 불고, 나무를 떠나온 잎들이 땅 위를 뒹굴고 있었다.

아, 저것은?… 무지하게 크다. 단재 신채호 선생 동상 옆에 철제 구조물로 책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바로 직지다. 가까이서 보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나 역시 이의 존재를 안 것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왜 직지를 여기 예술의전당에 설치해 놓았을까? 답은 바로 나온다. 청주가 낳은 세계 최고의 걸작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청주에 오시거든 예술의전당에 들러 꼭 이 직지를 보시라. 이렇게 거대한 책을 그 어디서 보겠는가?

이제는 다리 하나를 건넌다. 바로 직지교다. 실토하건대, 이 무지개 같은 다리가 직지교인지 알지 못했다. 확인한 순간, 내가 청주에 사는 사람이 맞는가 하고 자문한 적이 있다. 노란색과 연두색인 두 개의 아치가 엑스자로 교차하여 양쪽 난간에 연결되어 있다. 청주가 인쇄문화의 발상지이자 새천년 정보문화 도시임을 알리기 위해 '직지교'라고 이름 하였다. 아치는 삼재인 천지인을 상징한다고 한다. 아,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더 놀란 것이 있다. 높이 솟은 철당간 쪽에서 흥덕사지 방향으로 다 건너려고 하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문자가 보인다. 그것도 그제야 보인 것이다. 직지교 난간 기둥에 아주 보기 좋게 양각되어 있었다. 나랏말싸미로 시작되는 훈민정음이다. 내가 요즘 가슴에 품고 다니는 그 훈민정음! 가슴이 쿵쿵 떨린다. 아니, 직지교에 웬 훈민정음이? 뇌리에 뭔가 퍼뜩 스친다.

직지와 훈민정음은 같은 점이 있다. 둘 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또 뭘까? 그야말로 이 둘은 기록문화 혁명의 쌍벽이요 아이콘이다. 직지는 인쇄 혁명, 훈민정음은 문자 혁명을 가져왔다. 꼭 프랑스 혁명만이 위대한 혁명인가? 기록과 문자 혁명이 여기 청주에서 비롯되었다.

직지의 본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직지심체요절'이다. 금속활자로 찍었고,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42줄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다. 직지코드 영화에서는 구텐베르크가 고려의 직지 인쇄술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요즘, 김진명 작가가 쓴 '직지-아모르 마네트'라는 소설이 인기다. 세간에 화재가 되면서 일약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줄거리를 보니, 직지코드 영화를 더 발전시켜 소설화 한 것 같다. 작가는 직지에서 더 나아가 훈민정음과 반도체까지 이야기 하고 있다.

직지의 저자는 고려 말기 백운화상이다. 직지란 한마디로, 선불교의 요체를 담은 책이다. 제자들은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흥덕사에서 그 어려운 금속활자를 만들어낸다. 어떻게 금속활자를 만들었을까? 그만한 역량은 어디서 나왔을까? 잠깐 국보 제41호인 용두사지 철당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청주 주위에 철이 많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풍부한 철과 그동안 대장경을 새기며 축적한 인쇄술이 주효했다. 이건 상상이라기보다 논리에 가깝다.

훈민정음을 보자.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독창적인 문자다. 사람의 발음기관을 본 따고, 삼재인 천지인에서 착안했다. 직지교를 왜 삼재로 상징화 했는지 이해가 간다. 직지는 인쇄술에 혁명을 가져오기는 했으나, 활자가 조잡하고 한자로 되어 있어 백성들이 읽기에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널리 퍼지지 못했다. 만일 직지가 성공하여 구텐베르크 성경처럼 많이 팔려 나갔다면, 고려판 베스트셀러 불경이 되었을 것이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나오지 못하는 비운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훈민정음은 소리글자로 무엇이든 적을 수 있다. 닭 울음소리나 개짓는 소리까지도. 이는 세종의 지극한 애민정신에서 비롯되었다. 그동안 한자 때문에 힘들던 백성들에게 한줄기 빛이었다. 하느님의 말씀이요, 부처님의 법음이었다. 세종은 1443년 12월 한글 창제 사실을 달랑 57자로 발표하고, 이듬해 2월 최만리 등의 반대 상소를 받고는 청주 초수로 행차한다.

왜 하필이면 청주였을까? 단지 초정 약수가 안질 치료에 좋아서? 아니다. 청주가 직지의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금속활자로 문자를 찍어냈던 기록의 본향이 청주였기에…. 난 그렇게 생각한다. 세종은 초정 행궁에서 훈민정음을 다듬는다. 이때 속리산 복천사에 있던 신미대사를 부른다. 신미와 함께 미흡했던 모음을 보완하고 문자를 시험한다. 신미는 당시 5개 국어에 능통한 학승이었고, 대장경 전문가였다. 조선왕조실록의 행간이나 관련 기록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직지교를 건넜다. 흥덕사 절터를 거닐며 생각에 잠긴다. 직지, 훈민정음…. 이 모두가 청주에서 태어났다. 요즘은 대규모 반도체 공장까지 들어서 있다. 그렇다면 여기 청주가 얼마나 위대한 기록문화의 도시인가!

약력
▶2006년 월간 문예사조 수필 등단

최시선 수필가·광혜원고 교장
최시선 수필가·광혜원고 교장

▶CJB 청주방송 제5회 TV백일장 수필 장원
▶한국문인협회·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청주문인협회 부회장
▶저서 '청소년을 위한 명상 이야기', '학교로 간 붓다', '소똥 줍는 아이들', '내가 묻고 붓다가 답하다', 수필집 '삶을 일깨우는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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