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내음 맡으니 어릴적 생각이 나네요"

3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윤갑근 변호사(전 대구고검장)가 이제 또 다른 길을 가기 위한 한 발을 내딛기에 앞서 고향 마을을 찾아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을 되돌아보고 있다. / 김용수
3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윤갑근 변호사(전 대구고검장)가 이제 또 다른 길을 가기 위한 한 발을 내딛기에 앞서 고향 마을을 찾아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을 되돌아보고 있다. / 김용수

[중부매일 장병갑 기자} 2019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첫날.
 
아침부터 내린 비로 대지는 촉촉이 젖어있었다.
 
젖어있는 대지 위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물안개 저편에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청주시 상당구 미원용 월용1구 마을이 아련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여기서 나서 자랐는데, 인생에서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시작을 하는 것이잖아요. 색다른 길을 가는데 내가 왜 이 길을 가야하는지 출발점에서 생각을 해 보고 싶었고 여기 시골 출신이라는 것을 다시 새기고 싶었습니다."
 
지난 2017년 3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이듬해부터 변호사로서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윤갑근 변호사(전 대구고검장)가 이제 또 다른 길을 가기 위한 한 발을 내딛기에 앞서 고향 마을을 찾았다.
 
하염없이 내리는 빗속에서 고향 마을을 마주한 윤 변호사는 잠시 추억에 젖었다.
 
"지금은 인구도 많이 줄고 노인 위주로 있지만 예전에서 가구 수도 많고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저의 집도 6남매로 함께 놀고 말썽 피우고 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윤갑근 변호사의 고향은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월용1구 농촌마을이다. 지금은 마을입구에 버스정류장이 있지만 윤 변호사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까지 걸어서 다녔단다. / 김용수
윤갑근 변호사의 고향은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월용1구 농촌마을이다. 지금은 마을입구에 버스정류장이 있지만 윤 변호사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까지 걸어서 다녔단다. / 김용수

그러나 어린 시절 좋은 기억만 있던 것은 아니다.
 
"전기는 물론 길도 포장이 돼 있지 않아 걸어 다니기도 힘들었어요. 겨울에는 방에 물을 떠 놓으면 물이 얼 정도로 추웠어요. 당시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일을 해야만 했어요. 공부하기보다는 밭에 나가 일하고 소꼴을 베고, 나무도 해 오고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지만 금관초등학교와 미원중학교를 졸업한 윤 변호사는 당시 도내 수재들이 간다는 청주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공부를 썩 잘했던 편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머리를 물려 받은 것 같습니다"라며 머쓱하게 웃었다.
 
노력한 것에 비해 좋은 성적을 받으면서 당시 친구들로부터 '이상한 놈'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어려웠던 형편 탓에 '사업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철이 들면서 '법조인'을 꿈꿨던 윤갑근 변호사는 자신의 꿈을 이룬, 어찌 보면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도 있단다. / 김용수
철이 들면서 '법조인'을 꿈꿨던 윤갑근 변호사는 자신의 꿈을 이룬, 어찌 보면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도 있단다. / 김용수

철이 들면서 '법조인'을 꿈꿨던 윤 변호사는 자신의 꿈을 이룬, 어찌 보면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날을 되돌아 볼 때 아쉬움이 묻어난다.
 
먼저 삶을 살아온 선배로서 젊은 세대에게 '제삿날 잘 먹으려다 굶어 죽는다.'는 말을 전한다.
 
하루 잘 먹기 위해 다른 날은 굶는 미련한 삶을 살지 마라는 것이다.
 
"부모님 세대는 인생의 목표가 자식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었고 저의 세대는 자신의 목표에 도달화기 위해 희생해야만 했고 모든 것을 접어놓아야만 했던 삶이었습니다. 그런 삶은 지금의 기준으로 되돌아보면 불행 한 것이 아닌 가 생각됩니다.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통해 자신의 꿈을 정하고 꿈을 이루기 노력하는 풍부한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검사시절 검찰의 대표적인 '특수통'으로 꼽혔던 윤갑근 변호사는 검사라는 직업상 강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지만 서민들의 애환을 알고 감성 또한 남다른 속된 말로 '촌놈'이다. / 김용수
검사시절 검찰의 대표적인 '특수통'으로 꼽혔던 윤갑근 변호사는 검사라는 직업상 강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지만 서민들의 애환을 알고 감성 또한 남다른 속된 말로 '촌놈'이다. / 김용수

검사시절 검찰의 대표적인 '특수통'으로 꼽혔던 윤 변호사는 특별수사와 강력범죄 수사능력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한 화려하고 강직한 검사였지만 새로운 길을 가야하는 긴장감은 어쩔 수 없다.
 
"새로 시작하려는 정치는 정말 '정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했고 맛도 못 봤다고들 하는데 전혀 다른 영역, 흔히들 정치를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간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합법과 불법, 탈법이 혼재된 상황에서 법을 집행했던 사람으로서 적응해 나가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지에 대한 회의도 들고, 의문도 들지만 평생을 법속에서 살아왔던 만큼 법속에서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힘든 길이지만 '정치'에 뛰어든 이유는 공무원으로서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고 삶을 영위한 만큼 어려워진 국가를 지켜만 볼 수 없어서다.
 

3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윤갑근 변호사(전 대구고검장)가 이제 또 다른 길을 가기 위한 한 발을 내딛기에 앞서 고향 마을을 찾아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을 되돌아보고 있다. / 김용수
3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윤갑근 변호사(전 대구고검장)가 이제 또 다른 길을 가기 위한 한 발을 내딛기에 앞서 고향 마을을 찾아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을 되돌아보고 있다. / 김용수

"제가 평생 법을 집행하던 검사로서 공무원 생활을 30년 가까이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라가 정말 엉망입니다. 특히 법치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냥 있어서는 안 되겠다. 바로 잡아야 한다. 거기에 일정부분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2년 간 다른 방법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시도해 보려고도 했지만 결국 제도권 내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정치권에 직접 들어가 바로 잡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라도 내 역할 끝났다거나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미련 없이 (정치를) 그만둘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제 꿈은 제대로 된 나라가 돼 제가 정치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공수처 설치, 수사권조정, 피의사실 공표문제 등 최근 여러 쟁점에 휩싸인 검찰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 안에 있을 때 안보였던 것이 밖에 나와 보니 보입니다. 여러 쟁점이 많은데 그러한 것들보다 중요한 것이 검사와 수사관들의 실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고소·고발사건들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해서 처리하려는 노력들을 게을리 하고 검사가 판사화 돼 당사자들의 주장을 판단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큽니다. 검사와 수사관들의 역량을 키워서 민원인들의 민원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하고 이것이 검찰개혁의 첫 번째 화두가 돼야 합니다."
 

다시금 신뢰받는 정치를 만들기 위한 밀알이 되겠다며 새로운 길로 나선 윤 변호사.
 
"작금의 현실은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는 현실입니다. 정치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서 봉사자로서 정치인들, 사회를 풍요롭고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로 끌어가는데 기여하는 정치, 신뢰받는 정치가 될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이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윤 변호사가 꿈꾸는 정치는 화려하지 않다. 그저 국민들이 편안하고 걱정 없이 생업에 종사한 것이란다.
 

윤갑근 변호사 셀프 프로필

   - 육군법무관
 -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 대검찰청 강력부장
 - 대검찰청 반부패부장
 -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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