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소로리 마을에 도착하자 마을 주민들이 마을 회관 앞 공터에서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고 있었다. 토종 배추인 구억배추이다. 올 봄에 우리 조합에서 이 마을로부터 밭을 임대해 재배해 수확한 것이다. 나는 밭을 향해 걸어갔다. 조합원들이 배추를 뽑아 손수레에 담아 나르고 있었다. 배추들이 무더기로 쌓인 곳에서 조합원 한 명과 논살림의 방미숙 대표가 배추를 다듬고 있었다. 방 대표 곁에 앉았다. 함께 배추를 다듬다가 자그마한 노란 배추꽃이 눈에 띄였다. 꽃이 예쁘다고 말하자

"배추꽃은 십자화예요. 자연에서 혹시 길을 잃어서 먹을 게 없으면 십자화는 대부분 식용이라고 보면 되요."

방 대표는 배추꽃을 열어 보였다. 꽃 안에 암술, 수술이 있었다. 저것들의 조화로 인해 밭에 배추들이 자라고 김장마저 담그게 되니 새삼 경이로왔다. 점심 시간이 되어 밭에서 막 따온 구억배추잎, 토종쌀인 붉은메로 지은 쌀밥, 수육, 된장국에 막걸리를 곁들였다. 밥맛도 좋고 흥겨움이 물씬 돌았다.

협동조합 일을 해나간지 2년 남짓 되어간다. 협동조합이란 조직은 1844년에 영국에서 처음 생겨났다. 그 무렵은 산업혁명이 활발히 진행되던 시대였다. 산업혁명은 인류사의 3대 혁명이라고 인정되는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 중의 하나이며 정보혁명의 기반이 된다.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 이전에 인지혁명의 존재를 주장하는데 일리 있어 보인다. 그처럼 중요한 산업혁명은 빛이 되는 만큼 그림자도 깊다. 노동문제와 식민지 문제를 내외적으로 초래했다. 이후 1848년엔 유럽에서 대대적인 혁명의 물결이 일어나는데 마르크스는 그 해에 '공산당 선언'을 발표해 향후 공산주의 혁명들에 단초를 제공한다. 그것 역시 자본주의의 그림자와 밀접한 인류사의 주요 사건임에 틀림없다. 협동조합 운동이 일어난 해인 1844년을 이런 맥락 속에서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연원을 지닌 협동조합은 종류들도 많고 복잡한데 영리와 비영리를 기준으로 나누기도 한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그 중 비영리 협동조합이다. 필자가 속한 '임원경제 사회적 협동조합'도 여기에 속한다.

나는 한 때 대형 증권사에도 몸을 담았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증권업의 종사자였던 것이다. 대학시절엔 운동권 조직 소속은 아니지만 그 물결에 합류해 데모도 하곤 했다. 좌파적인 것들의 가치는 우파가 아무리 활성화된다고 해도 무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협동조합 운동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 경직 및 폭력화의 길로 나아갈 때 제기됐던 그 대안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북유럽의 복지주의 모델이나 제도경제학이 내세우는 대안들처럼 말이다.

협동조합 그 중에서도 사회적 협동조합 일에 관여된 나는 그 일을 하면서 즐거움과 가치를 만날 기회가 잦은 편이다. '논살림'은 생물 다양성을 통해 건강한 논생태를 위한 전문 단체이다. 또다른 협업 단체로서 '전국씨앗도서관 협의회'가 있다. 이곳은 토종 씨앗들을 수거해 도서관 형태로 저장하며 나눔 운동을 한다. 이런 전문적이며 가치 지향적인 일을 하는 조직의 분들과 호흡을 함께 맞추는 일, 무엇보다도 마을 단위에서 전통과 협동의 가치 속에 기꺼이 함께 일을 하며 시골의 정서를 느끼게 해주는 분들과의 일이 즐거워 감사를 느낀다. 아름다운 마음씨의 사람들과 김장 김치를 함께 담가 항아리보다 큰 통 열 개에 담아 포크레인으로 판 땅에 묻었다. 겨울이 만약 춥다해도 그리 추울 것 같지 않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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