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문학]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19세기말 한·중·일 동양 삼국은 근대 국가를 만들기 위해 일부 정치학자나 역사학자들은 자국의 역사 속에 있는 무사(武士)에 대한 영웅과 무사도(武士道)에 대한 담론들을 내놓았다. 서구의 강력한 무력(武力)과 상대하면서 국난을 겪은 당시 삼국은 그 원인을 '문약(文弱)'으로 보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상무정신을 강조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일본은 그들의 '무사도(武士道)'를 국민윤리로 체계화하여 일본내국인들의 결속을 다졌다. 일본에서 망명중이던 중국의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은 일본의 모습을 보고 중국의 역사 속에 등장한 무사도와 중국 혼을 통해 중국의 상무정신을 알리려 1904년 '중국의무사도(中國之武士道)'를 발간했고, 같은 해 대한제국의 멸망을 예언하는 '조선망국사략'을 저술했다. 그 후 그는 안중근의 죽음을 애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조선은 중국의 번국'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확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영향이 있었는지 안자산(본명 안확, 1986∼1946)은 '조선무사영웅전'을 1940년 발간한다. 이미 그 이전에도 이 책에 담긴 내용으로 여러 신문에 기고해 왔었다. 이 책은 국문과 한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원래 명칭은 '조선무사지(朝鮮武士志)'로 조선무사도(朝鮮武士道)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왜 이 책을 통해 상무정신의 고취와 근대 국민국가 만들기를 하고자 하였을까? 여기에는 그 당시 안자산의 시대인식이 담겨 있다. 무사도를 민족의 고유사상으로 보고 중국이나 일본의 담론들과 차별화를 두려 애썼으며, 민족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있어 이를 조선인들이 내면화하기를 기대했다. 여기에는 무사도 규범을 전통적 윤리 규범과 함께 하여 '충의(忠義)'를 기반으로 하는 무사도의 덕목을 강조했다.

그러나 안자산은 일본 무사도를 모방했고 전근대적인 사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학계의 비평도 있었지만, '조선무사영웅전'은 국학자로서 길이 남는 업적이 되고 있다. 특히 지금처럼 무예계가 종주국(宗主國)과 전통성의 소비적 논란에 비하면 훌륭한 담론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개화기와 더불어 시작된 그의 삶이 1945년 해방의 기쁨을 누림과 동시에 마감했지만, 그가 겪었어야 할 시대적인 역경은 그의 호인 '자산(自山)'이 지니고 있는 자유, 자주, 자치의 의미처럼 고난 속의 갈망이었을 것이다.

자산이 살아온 길이나 그의 글들은 외래 문화의 수용과 토착화 문제에 대해 전통과의 융합을 노력한 흔적들이 많다. 그는 당시 서양 문물을 선호하여 여기에 있던 지식층의 사고와는 달리, 서양 사상에 일방적으로 사로잡히지 않고 전통과의 융합 관계를 모색하며 새로운 발전논리를 추구한 사상가이기도 하다. 특히 무사의 덕성을 통해 국민의 원기를 찾고 민족 체질을 개조할 수 있으며, 진실한 민성(民性)을 함양할 수단으로서 무예를 보고 있었다.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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