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이야기] 신동선 청주중앙여자고등학교

입동과 소설도 지나고 영하로 떨어진 빨간 알코올 기둥이 지난여름을 눈앞으로 불러온다.

그렇게 무더웠던 지난 8월 초 새벽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데 등산은 너무 위험하다."

"혼자가 아니고 여럿이 같이 가느냐?" "아침도 안 먹고 가느냐." 걱정을 태산만큼 하는 데도 배낭을 메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그동안은 너무 더워서 그림자가 길어지고 시원한 기운이 느껴질 때 학교 울타리 안에 있는 정원이나 부지런한 선생님들이 가꾸시는 텃밭을 서성였다. 밖으로 나가도 근처 가까운 미동산을 몇 번 다녀왔을 뿐이었다.

집 앞에서 같이 가기로 약속한 부지런한 후배 선생님에게 벌써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전날 받아둔 렌터카의 핸들과 페달에서 오는 익숙하지 않은 감각을 느끼며 출발하여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을 기대하며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이런, 오늘도 약속 장소를 잘 못 알았나?" 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속속 차가 들어오며 하나 둘 웃음 띤 얼굴들이 나타난다. 참으로 행복한 표정들이다. 식물을 보러 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 하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서둘러 출발하여 2시간 쯤 걸리는 목적지에 도착하니 산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땀이 옷을 적신다. 같은 목적으로 가까운 광주에서 오신 반가운 분들과 합류하여 인사를 나누니 처음 뵙는 분들과도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진다.

"이 '도둑놈의 갈고리'는 작은 도둑이죠?"

"그렇죠. 큰 도둑은 잎도 열매도 훨씬 크지요."

"서어나무에 붙은 겨우살이는 처음 보네요."

"흔히 참나무에 붙어사는데 여긴 서어나무에 붙었네요."

"이게 잎과 꽃이 평생 만나지 못하고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상사화죠?"

"네. 이건 여기에 자생하는 진노랑상사화예요. 참 귀한 녀석이죠."

"그래요. 자연에서 보는 어느 풀 하나, 꽃 한 송이 소중하고 반갑지 않은 것이 없어요."

우리 교사들에게는 학교에서 보는 많은 학생들도 이들과 같다.

형편이 어려워도 늘 밝은 아이도, 힘들어하는 아이도 내 생활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한다.

늘 말썽을 부려 속을 썩이는 녀석은 내 마음에 굳은살을 만들어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힘을 준다.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예술에 소질이 있거나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학생이 없다. 이 녀석은 이래서 소중하고, 저 녀석은 저래서 예쁘다. 학생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학생들을 생각하면 입가에는 언제나 웃음이 매달린다.

시원한 바람이 코 끝을 간지럽힌다.

학생들을 만날 기대로 행복한 월요일이다.

신동선 청주중앙여고 교사
신동선 청주중앙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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