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정현 농협청주교육원 교수

우리는 매일같이 밥을 먹고, 한국음식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예부터 '밥을 먹고 생긴 힘'을 '밥심'이라 하였고,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란 표현처럼 흰 쌀밥만 있으면 김치 한 조각, 간장 한 종지에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밥은 단순히 끼니를 제공하는 에너지 공급원에 그치지 않는다. 개인 간의 소통 수단이며, 사회와 국가를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식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이 함께 밥을 먹는 것도 끼니 해결을 위한 수단을 넘어 음식을 통해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려는 시간이다. 삼시 세끼 먹기 힘들었던 시절 "밥 먹었느냐?", "진지 드셨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중요한 인사였고, "언제 같이 밥 한 번 먹자"는 헤어질 때 흔한 인사말인 것처럼 밥에는 기쁨, 즐거움, 애환 등 삶의 모습이 담겨 있는 우리의 정서이자 문화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의 식생활에서 '밥=쌀'이란 등식은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경제발전으로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식생활이 풍요로워지고 식습관도 서구화되었다. 쌀밥 대신 육류, 빵 등 다양한 음식 섭취가 가능해져 쌀 소비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요즘에는 흰 쌀밥은 건강에 좋지 않고 비만과 당뇨의 주범으로 오인하면서 쌀을 기피하는 기현상도 벌어진다. 통계청 '양곡소비량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61㎏)은 30년 전인 1988년(122.2㎏)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국민 한 사람의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67.1g으로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이 100~120g인 점을 고려하면 하루에 밥 두 공기를 채 먹지 않는 셈이다. '밥심으로 산다'는 표현이 점점 무색해지고 말 그대로 '쌀밥'이 '찬밥'신세가 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올해 쌀 생산량은 374만 톤으로 작년보다 10만 톤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쌀 재배 면적이 줄어든데다 수확기인 9월 이후 한반도를 지나간 태풍으로 인한 기상 악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쌀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쌀값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일부에서 쌀값이 급등한다거나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생각하지만 잘못된 오해이다. 쌀 20㎏ 소비자 가격을 6만원, 밥 1공기에 쌀 100g을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밥 1공기 가격은 300원에 불과하다. 라면 1봉지 심지어 자판기 커피 1잔 가격보다도 낮다. 쌀 1되의 가격으로 소고기 600g을 살 수 있었던 1950년대와 비교하면 큰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쌀을 대신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대체 상품은 무수히 많다. 쌀의 소중함이 과거보다 못한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쌀을 대신할 먹거리가 많아도 쌀 없이 살기 힘든 게 우리 일상이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46.7%로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기상이변이나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면 언제든지 심각한 식량안보의 문제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쌀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담고 있다. 한 톨의 쌀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 농부의 땀과 수고가 담겨있다. 어쩌면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 우주의 무게가 될 수 있기도 하다.

이정현 농협청주교육원 교수
이정현 농협청주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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