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조영의 수필가

12월이 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 한해 마무리, 마지막 남은 달력, 후회, 빠른 세월, 지난 것을 돌아보는 아쉬움이 있다면 크리스마스를 꼽기도 하고 겨울 놀이, 일기쓰기, 새해 설계 같은 희망을 말하는 이도 있다.

나는 채용이란 말을 먼저 떠올린다. 12월이 되면 방과후 학교 강사 채용 공고가 뜨기 시작한다. 학사 일정이 바뀌어 대부분 학교는 내년 강사 채용을 당해 년에 결정하는데 지금 그 시기다. 각 학교 홈페이지, 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 위탁 공고 조회 수는 관심의 결과이고 암묵적 경쟁이다.

청년실업률 감소와 최저임금 연동제, 정규직 전환, 특수고용직 노동자 인정 등 고용 문제로 촉각이 곤두서는 냉혹한 현실이 내 모습이기도 하다. 취업용 이력서를 쓴다. 해마다 해온 일인데도 느낌은 조금씩 다르다. 올해도 채용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근무하던 학교에서 잘못되지는 않을까 불안과 걱정이 커진다.

방과후 학교 강사는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9개월에서 11개월 근무 기간이다. 방학 때 석면 공사나 새로운 공사를 하면 방학 중 수업은 없다. 상여금 퇴직금도 없고 4대 보험 혜택도 없다. 또 우후죽순 늘어나는 민간위탁 업체로 계약하는 학교도 있어 강사들은 여러 가지로 고충을 겪는다. 그런데도 경쟁률은 치열하다.

올해도 이력서를 대신하는 프로그램 운영 제안서를 쓴다. 경력이 한 해씩 많아지는 만큼 나이도 많아진다. 젊은이가 부러운 이유 중 하나다. 자기소개서는 자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쓴 글이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창작과 자기소개서는 차이가 있는지라 내심 신경 쓰인다.

자기소개서에 나를 자랑하기로 했다. 보람 있고 좋은 경험이었기에 꼭 알리고 싶다. 교실에서 '핸드폰 게임 NO'를 실천한 일이다.

방과후 학교 수업은 저, 고학년으로 나누어 분반하다 보니 학년마다 반마다 끝나는 시간이 다르다. 수업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 게임을 한다. 예전에는 만화책이라도 읽는 아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잠시 휴식의 시간, 책 읽는 아이는 없다. 휴대폰 게임에 빠진다. 여러 가지 사례를 들며 게임을 못 하게 했으나 여전했다. 다행히 나는 유휴 교실을 사용하여서 공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환경과 에너지' 수업을 하고 난 뒤 음료수를 먹고 나면 병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것을 활용하여 볼링 놀이를 한다고 했더니 뜻을 같이한다며 학부모께서 같은 음료수병을 보내주셨다. 10개 재활용 음료수병에 처음에는 흰콩을 조금씩 넣었다. 작은 공도 준비했다. 볼링 놀잇감이 되었다. 경기 방법만 알려주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볼링 핀 간격과 공을 던지는 거리와 규칙은 아이들 스스로 만들게 했다. 만족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볼링 놀이가 익숙하고 자신감을 느낄 때쯤 흰콩을 더 많이 채웠다. 볼링 핀을 쓰러트리는 일이 예전만큼 쉽지 않았지만, 집중도는 높았고 팔 힘은 세졌다. 사이사이 입씨름도 벌어졌다. 불만이 쌓이면서 벌칙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모였다. 벌칙을 의논하는 시간은 어수선하고 충돌도 있었지만 가장 합리적인 놀이 방법을 찾아냈다.

수업이 끝나고 방과후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 목소리가 커졌다. 핸드폰 게임은 잊은 지 오래다. 함께하는 놀이가 게임보다 즐겁다는 것을 안다. 볼링 핀이 쓰러지면 환호하며 손뼉쳐주고 잘 되지 않으면 격려해주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볼링 놀이가 시작되면 교실은 운동장이 된다. 시끄럽지만 규칙이 있고 협력이 있다. 눈빛도 빛나고 활기차다.

가끔은 단체전으로 경기를 한다. 팀을 위해서 협동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서툴고 느리지만 스스로 알아낸다. 볼링 핀이 정확히 맞았나보다. 쓰러질 때 들리는 소리로도 알 수 있다. 경쾌한 소리에 이어 함성이 터진다. 고요한 집중, 잠깐의 호흡 끝에 볼링 핀 쓰러지는 소리는 오감을 깨운다. 볼링 놀이로 친구와 관계도 좋아지고 집중력도 좋아졌다. 그리고 행복해졌다.

가끔은 반칙도 하고 야유도 보내어 토라지기도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행복하다. 좋은 관계는 좋은 수업을 만들고 좋은 경험은 바르게 성장을 한다는 것을 '핸드폰 게임 NO'를 통해서 배웠다.

12월 수업이 끝나면 볼링은 잠시 휴식이다. 긴 겨울동안 병 속 콩은 흙으로 돌아갈 봄을 기다릴 것이다. 나는 흙이 되어 아이들 마음을 심고 뿌리를 내려 줄 새로운 2020년을 기다린다. 잘 될 거야. 두근거리는 나에게 토닥여주는 말이다.

조영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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