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연경환 충북기업진흥원장

며칠 전 한국경제신문의 기사를 읽었다. 기사내용은 이랬다. 세계적인 3차원 디자인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인 솔리드웍스는 3D 설계 소프트웨어 제품인 '솔리드웍스'를 판매한고 있는데, 이 소프트웨어를 1년간 무상지원하는 신생기업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금이 100만 달러(한화 12억원 정도) 이하인 스타트업은 지원대상이 된다고 한다.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4,000개 이상 팀이 이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아이디어를 물리적인 제품으로 만들었고, 한국에서도 22개 팀이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왜 이런 프로그램을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본질인 민간기업에서 운영하는 것일까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솔리드웍스 최고경영자는 "스타트업 지원 전략은 장기적으로 솔리드웍스를 위한 또 다른 투자"라고 강조한다. "한 번 제품을 판매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갈 수 있는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프로그램에 참여한 팀 중 30%가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성장해 솔리드웍스 제품을 계속 구매하고 있으니 '윈윈(win-win)'인 셈"이라고 말한다.

마케팅의 방법도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 마케팅은 관계맺기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아마도 새로운 트렌드가 아닐지도 모른다. 벌써 이전부터 이런 관계맺기의 방법은 비즈니스의 여러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공공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금전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닐지라도 관계맺기는 해당 공공기관을 살아있게 만드는 실질적인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쉬운 예를 들어 자금에 목말라하는 기업이 있다고 하자.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에서 제 때에 지원된 자금은 기업대표에게 고마운 기억을 남길 것이고, 기회가 되었을 때 해당 지원기관의 필요성을 얘기하는 우군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업인들끼리의 모임에서 회자되면서 다른 기업도 해당 기관의 문을 두드리게 만들 것이다.

기업진흥원에 몸을 담은 이후 이 조직의 설립목적이 기업지원에 있다는 단순한 사고에서 시작해 2019년 한 해 동안 72개 기업의 대표님들과 현장에 찾아가 면담을 진행했다.

하루 반나절의 시간을 투자해야 2~3개 기업 대표님들과 미팅을 가질 수 있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현장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분들이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기업애로를 담당하는 기관에서는 애로유형에 따라 자금, 인력, 판로, 인허가, 공장입지 등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해결유무에 따라 즉시해결, 건의과제, 장기과제, 불가 등으로 구분하기도 할 것이다.

현장방문과 상담을 토대로 나만의 분류법으로 보면 기업의 애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해볼 수도 있겠다. 알지 못해서 못하는 경우, 시간이 없고 귀찮아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 또는 그냥 불편을 감수하는 경우, 불가항력이라 시간이 해결해 줄 애로인 경우 등이다.

두 번째나 세 번째는 지원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알지 못해서 못하는 경우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한다.

기업운영에 있어 애로사항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자금조달과 인력운용의 문제다. 그 다음으로 판로개척이나 내수부진 등의 애로사항을 꼽는다. 면담과정에서 이런 애로사항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여쭤본다.

자금의 경우는 몇몇 정책자금 운영기관을 알고 있는 대표님이 있긴 하지만 자금지원기관과 보증기관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고, 소상공인자금을 취급하는 기관과도 혼동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정책자금을 알고 있는 기업대표님도 어쩌다 열심히 영업하는 은행지점장님이 알려줘서 지원받는 경우도 많다.

인력문제도 양상은 비슷하다.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는 방법을 여쭙는다. 다행히 고용노동부의 워크넷은 많이 보편화되었고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사용자는 외국인근로자 채용 때문에 병역특례기업 신청요건 때문에 사용한 경우가 많고, 노동자는 실업급여로 알게 된 경우가 많다. 어쨌든 대부분 워크넷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신규채용에 성공했을 때 이용 가능한 수많은 인건비 지원사업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까왔다.

기숙사 임차비 지원사업, 복지시설 설치비 지원사업, 채용인력에 대한 인건비 지원사업 등 챙겨가야 할 사업들이 무수하다.

이런 사업들은 알지 못해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업들이다. 해당 사업을 운영하는 지원기관에서 꼭 챙겨줘야하는 사업들인 것이다.

해마다 1월이면 중소기업지원시책 설명회를 기관마다 또는 합동으로 앞 다투어 개최하는데 막상 이용하는 기업에서는 잘 몰랐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딜레마다. 지원사업을 잘 이용하는 기업은 월별로 꼼꼼히 메모하는 직원이 있거나 매번 그것을 챙기는 기업대표가 있기 때문이고, 그런 분들이 입소문으로 지원시책을 알리는 홍보맨 역할을 해준다.

지원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이런 홍보맨들과 각별한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현장에 꾸준히 나가봐야한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과는 각인효과가 생긴다. 기업대표들이 궁금할 때 물어볼 곳이 내가 된다는 것은 비용 없이 사업을 홍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란 4자성어가 있다. 어리석은 질문에도 현명하게 답한다는 의미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떤 질문에도 현명하게 답변할 자세가 필요하다. 다른 의미로 요즘 젊은 사람들이 흔히 만드는 두문자어(頭文字語, acronym)로 이 말을 이해하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우문현답 :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이다. 항상 가슴에 새겨야할 말이다.

연경환 충북기업진흥원 원장
연경환 충북기업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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