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며칠 전 선유도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의 아들이 반가워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날씨가 얼마나 좋은지 푸른 바다 위로 펼쳐진 파아란 하늘 위에 동동 떠 있는 흰 구름은 마치 징검다리를 놓은 것 같았다.

내가 찍은 사진은 그의 어머니에게 보내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 지인의 카톡을 두드렸다. 카톡의 프로필 사진 배경화면에는 그녀의 귀여운 손주들이 뒹구는 모습이 올라와 있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어도 부모의 눈에는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같이 걱정이라는 지인의 말에 반듯하게 잘 키웠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 마음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배경화면에서 뒹구는 그녀의 손주들에게 눈길이 멈춰지고 천사가 따로 없구나라는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느 때부터인가 친구들의 카톡 배경 화면에도 본인들의 모습이 아닌 아기들의 사진이 심심치 않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꼭 그렇게 할머니 티를 내야 하는거니?" 일찍 아들을 장가들인 친구 희자에게 시샘 반 부러움 반으로 친구들이 볼멘소리를 하자 "너희들이 아직 몰라서 그런 거란다. 시어머니 핸드폰 배경화면에 손주 사진을 넣어주는 것이 며느리에 대한 예의란다"라고 대답해 한참을 웃었다.

희자는 자랑질이 부러운 친구들의 놀림에 슬며시 액정을 잠재우면서도 연신 싱글벙글하다.

그러고 보니 손주를 얻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사람들의 핸드폰 배경 사진에는 자의든 타의든 어린 아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다.

어디 그뿐이랴 손주 자랑은 돈 주고도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는 것을 보면 자식보다 손주가 훨씬 예쁘긴 한가보다.

"아무리 손주가 예뻐도 내 자식보다 귀하고 예쁘기야 하겠어요. 저는 이해가 잘 안 가네요." 어느 날 손주 자랑에 여념이 없으신 분께 질문을 하자 "자식은 내가 먹이고 입히고 신경써야 하는 일차적 책임이 있었지만 손주는 그저 예뻐만 해주면 되잖아요."라고 한다.

아! 그럴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나이에 가진 내 자식은 먹고사는 일에 바빴기에 귀엽기는 하였지만 책임이 우선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지만 닫은 입을 무장해제시켜버리는 것 또한 손주들이다. 나이가 들은 만큼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인지 이야기보따리 중의 보따리가 손주 자랑이다. 앞 다투어 자랑하는 조부모들의 눈에서는 손주 사랑이 뚝뚝 떨어진다. 자식 키울 때 매를 들었던 손이 손주에게는 장난감 하나 과자 하나 더 쥐어주고 싶어 오냐오냐 하기도 한다. 손주 바보들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조부모들의 핸드폰 액정 속에서 커가는 손주들이 있다면 맞벌이를 해야 하는 젊은 부부들이 쓰는 '부모님 찬스'로 커가는 아기들도 있다. 아기들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마법 같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고, 수없이 날리는 손주의 웃음이 눈에 밟혀 힘에 부치지만 손주 돌보는 일을 마다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본인들과 자녀와의 관계가 손주들을 통해서 더욱 견고해진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힘들어도 자녀들이 자리 잡을 때까지 '부모님 찬스'권을 준다고 하는데….

노래 가사처럼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 참사랑의 모습들이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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