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숙 수필가

장맛비가 흥건히 쏟아지는 오후, 아파트 입구를 들어서려다 무심코 눈길이 멈췄다.

우산을 써도 옷이 흠뻑 다 젖는 빗줄기에도 아랑곳없이 정문 앞에서 노점상을 하는 오십 후반의 나이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책 속에 푹 파묻혀 세상을 잊고 계신 듯했다. 아파트 담장 아래 간이로 만든 투명 비닐 천막을 치고 토마토와 오이, 풋고추, 호박, 가지, 감자 등을 가지런히 늘어 논 가운데 자리에 앉아 돋보기안경 넘어 독서 삼매경에 빠진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그림을 보는 듯 맑고 정감 어렸다.

흑과 백의 명암 사진처럼 마침 건너편에 마주한 아주머니는 줄기차게 내리는 비가 원망스러운 건지 생활고에 지친 모습인지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허공만을 주시했다.

두 아주머니 얼굴에 천국과 지옥에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인가 싶었다. 같은 처지에서도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길은 다르겠지만 책을 읽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더없이 평온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물론 현실이 각박하고 막막하여 꿈을 꾸기조차 힘든 절박함의 경우도 있겠지만 지금의 형편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하고 천하여도 즐거움이 있고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하고 귀하여도 근심한다’말이 있듯이 모든 건 내 안에서 수용하여 꽃 피우기 나름일까.

여고시절, 대입시를 앞둔 고 3교실은 숨죽인 절간이었다. 창 밖 너머 잎 무성한 푸라타너스 나무 한 번 여유롭게 눈여겨 볼 틈도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옥죄였다. 시험 날은 다가오고 그것이 마치 인생의 사활을 건 듯한 불안감과 초조한 눈빛으로 잔뜩 풀죽은 우리들에게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종례시간에 던진 한 말씀은 잊혀 지지 않고 내 삶의 오랫동안 버팀목이 되어 왔다.

“상황, 그게 뭔데....도대체 얼마야, 살 수 있음 사자구.”

교탁을 ‘쿵’치며 그렇잖아도 가슴 설레며 사모하던 선생님의 강렬한 단문의 어투는 아직도 그 때의 신선한 자극처럼 늘 새롭게 나를 추스리게 한다. 살아감이 버겁게 느껴질 땐 쓰러질 듯 기우뚱거리다가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나만의 주문이 되기도 한다.

아픔에도 의연하게 웃을 수 있다는 건 용기이다. 어떤 어려움이든 피할 수 없으면 그 상황을 즐기라 했던가. 지금 어깨를 짓누르는 그 삶의 무게 자체도 결국은 이승의 아름다움이란 걸 깨닫기에는 아직도 더 많은 성찰이 필요한 걸까.

바삐 살면서 잊고 살 때가 많다. 내가 이렇게 숨 쉬며 걷고 누군가와 차를 마시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볼 수 있는 작은 일상의 감사함.

행복은 더 이상 파랑새가 아니고 어떠한 경우든 나의 품안으로 끌어안아 스스로 녹여가는 삶이라 믿는다.

궂은 날씨에 손님이 뜸한 노점의 두 아주머니.

온종일 마냥 누군가가 다가와 손 내밀기만을 기다리는 세월은 어쩐지 우울하다. 빗속에서도 어두운 눈으로 책장을 넘기는 아주머니의 좌판에 채소와 과일이 더 푸르고 더 붉은 빛깔로 싱싱하게 살아 오름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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