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회 한국전기안전공사사장

건설업계에는 대형 공사를 진행할 때 보신탕을 먹지 않는 관행이 있다. 또 소방원들은 불을 연상시키는 빨간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회에는 어떤 특정 행위를 하게 되면 불행한 결과를 초래 하므로 이를 하지않는 일종의 터부 즉, 금기가 존재한다.

필자 역시 금기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지키는 관습이 있다. 손이 없는 날을 택해 이사를 하고, 결혼식 주례를 앞두고는 문상을 가지 않는다. 여름철 태풍이 불거나 장마가 닥치면 골프를 치지 않는 것도 안전관리 기관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름대로의 금기다.

그러나 이러한 금기는 합리적 사고의 범위를 벗어난다.

즉, 손이 있는 날에 이사를 하면 재수가 없다든지, 개고기를 먹으면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다. 그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행동들을 금함으로써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심리 상태를 '마술적 사고(magical thinking)'라 한다.

금기를 어길 경우, 그 결과로 대개 사고 등 불행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재앙이나 사고는 사람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재앙을 피하기 위해 비록 비논리적 지식에 근거한 것이기는 하지만 금기라는 사전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필자도 몇몇 금기는 조심스럽게 지키는 편이다. 연초가 되면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직원들과 함께 '안전기원제'를 지낸다. 하지만 재앙이나 사고가 인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무관심과 부주의에 의한 필연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를 보더라도 인재(人災)가 훨씬 많다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누구나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그래서 인간은 오랜 세월 금기라는 것을 만들어 지켜왔다. 금기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안도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미신적 사고를 동원하기보다는 과학적 근거를 갖고 능동적으로 재앙에 대처할 수 있는 금기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전기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기관에 몸 담고 있는 필자가 만드는 금기는 '물 묻은 손으로 절대 전기 코드를 만지지 않는다', '하나의 콘센트에 문어발식으로 연결해 사용하지 않는다', '검사나 점검에 불합격한 전기설비를 사용하지 않는다' 등이다.

이런 것들이 전기 화재와 감전을 예방할 수 있는 진짜 금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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