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이야기] 김초윤 청주 만수초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학교에서의 경험들이 확장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사회이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역량과 삶의 기술, 사회성, 인성적 가치 등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태도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을 보면 좀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수업을 하다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남에게 피해 가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 선생님 수업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학생들이 있다. 교사 입장에서 여러 번 타이르거나 훈계를 해도 그 때뿐 돌아서면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책임감은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서 살 때의 일이 떠오른다. 우리와 친분이 있었던 교포 중 에릭네 가족 이야기다. 에릭은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유치원생 아이다. 어느 날 에릭이 그 반의 백인 아이 두 명과 싸움이 있었다고 한다. 에릭 엄마는 가끔씩 쉬는 시간에 학교를 가곤 했는데, 그날 마침 에릭 엄마가 보는 놀이터 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한 아이가 먼저 에릭을 때렸고, 이에 화가 난 에릭이 가만있지 않고 그 아이를 때린 모양이다. 그런데 그것을 지켜보던 다른 여자 아이가 합세해 에릭을 때렸고, 그러는 과정에서 세 아이가 엉겨 붙어 싸우게 됐다. 에릭 엄마가 'Stop'이라고 소리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싸움은 계속 됐다고 한다. 에릭 엄마는 어린 에릭 동생을 보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개입해 겨우 아이들을 말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사이 한 아이가 담임교사에게 달려가서 이 사실을 이야기한 모양이다. 에릭 엄마는 담임이 어떻게 조치할지 걱정하며 점심시간이 돼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돼 교실에 가보니 에릭은 없고 담임 선생님이 4일 간의 등교 금지를 알리는 '정학 처분서'를 주더라는 것이다.

에릭은 점심시간부터 2시간 이상 행정실(Office)에 격리된 채로 있었고, 교장 선생님은 에릭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내가 들었던 미국 초등학교의 엄격한 '룰(캘리포니아 경우 55개 룰)'대로 에릭은 바로 격리가 됐고, 에릭 엄마에게 전화 연락이 갔던 것이다. 애를 데려가라고.

에릭 엄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이에게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사실 여부를 확인해 나갔다. 에릭 엄마가 직접 목격을 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중심으로 차분하게 말하고 있지도 않은 일이거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그 아이와 주변 상황을 확인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이런 저런 정황에 비춰 에릭이 먼저 잘못한 일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다행스럽게도 교장이 정학 처분서는 폐기했다고 한다. 그 대신 싸움을 한 세 명의 아이에게는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어 3주 간 야외 활동과 '쉬는 시간(Recess Time)'을 박탈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미국 학교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는 '룰'은 결코 종이호랑이가 아니었다. 바로 아이들에게 책임을 엄격하게 묻게 되며, 정학 처분까지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교육에서도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체벌이 사라진 상황에서 보다 많은 선량한 학생들의 학습권과 생활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남에게 피해 가는 행동을 했을 경우 책임을 묻는 장치들이 필요하다. 학생들은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과정을 통해 책임감 있는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초윤 청주 만수초 교사
김초윤 청주 만수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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