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충청취재본부장

우듬지. 나무줄기에서 가장 꼭대기인 나무초리를 포함한 줄기 덩어리를 가리키는 순수 우리말이다. '우죽'이라고도 하는데 굳이 구분하자면 큰 나무 꼭대기 부분을 우듬지, 작은 나무 꼭대기 부분은 우죽이라 한다. "강풍이 불 때마다 신작로 미루나무 우듬지에 똬리 튼 까지 집이 위태롭다." 나무줄기의 두목(頭目)인 셈이다. 두목을 다른 말로 우두머리라 한다. 우듬지에서 파생된 순우리말이다. 나무줄기의 끝부분, 즉 뿌리와 맞닿은 부분 은 밑동이라 한다. 우듬지와 밑동은 나무줄기의 양쪽 끝부분이다.

나무줄기들이 성장 경쟁을 하다 보면 어떤 줄기이든 하나가 분명히 우듬지가 된다. 우듬지가 된 나무줄기는 더 자람을 지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옆 나뭇가지들의 자람을 곁눈질하며 성장을 조절한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우듬지는 다른 나무줄기보다 햇빛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강풍으로 가장 먼저 가지가 부러지고 잎이 떨어지는 등 심한 타격을 입는다. 새가 날아와 먼저 앉아 지저귀는 노래를 듣는 것도 먼저지만 배설물도 먼저 뒤집어쓴다. 담이나 화단에 심긴 우듬지면 조경용 카터기에 먼저 잘려 나가는 불운을 맞는다. 우듬지는 경쟁을 통해 보람차게 꼭대기에 올라섰지만, 그 운명은 죽음을 맞거나 심각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부닥친 우듬지는 나름 지혜를 터득한다. 더 자라지 않고 옆 나무가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생득적 본능 말이다.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나무들의 높이가 잔디밭의 잔디처럼 비슷함이 다 이런 우듬지의 지혜 때문이다. 어느 나무가 우듬지인지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는 얘기다. 높이가 고만고만하다.

우듬지를 노래한 시인이 있다. 김광규다.

"(전략) 분수처럼 수액이 뿜어 올라간 나무의 머리, 우듬지는 그러나 하나가 아니다. 옆에서 아래서 사이에서 나뭇잎과 꽃과 열매들 수없이 돋아나고 피어나고 익어가면서 무리 지어 다투며 자라 올라와 마침내 나무의 머리가 되는 순간에도 우듬지는 하나가 아니다. 혼자 우뚝 솟아오르지 않는다. 여럿이 함께 바람에 흔들릴 뿐."

이 시가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우듬지의 지혜'다. 무한경쟁을 물리치고 혼자 우뚝 솟아올랐지만, 성찰하는 우듬지의 지혜를 본받으라는 훈계다. 독주하지 말고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공동체를 형성할 때 인간의 삶은 평온하고 평화스러운 삶이 된다는 진리의 터득 말이다.

서로 잘 낫다고 우겨대며 남을 깔보고 무시하는 인간들이 우글거리는 사회다. 양보와 배려 그리고 공동체와 주인의식이 결여된 사회다. 아니 코딱지만큼도 없는 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관습도, 법도 이런 사회에 손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이 이상한 놈으로 취급당한다. 도덕은 땅바닥에 내팽겨져 비바람에 이리저리 뒹군다. '모난 정이 돌 맞는다'라는 경고 아닌 경고는 이젠 쓸모가 없다.

이런 우울한 사회를 비판하며 새로운 용어를 창출한 학자가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뒬깽(Durkheim)이고 그 용어는 아노미(Anomie)다. 아노미는 삶의 잣대가 되는 규범이 이완되거나 최악으로 붕괴돼 혼돈상태에 이른 사회를 말한다. 인간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규제할 방도가 없게 된 무규범의 사회다. 인간이 신을 거슬러도 신이 손쓸 수 없는 신화시대의 상황을 말한다. 동방예의지국라 자타가 공인했던 대한민국이 왜 이런 지경에 빠졌을까? 답은 오로지 하나. 사회를 저버리며 국가만을 앞세우는 정치판의 이대올로기다. 우리 정치는 줄곧 국가와 시민사회의 경계를 공고히 하며 시민의 국가개입을 철저히 봉쇄했다.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권력을 위임받았지만 따지고 보면 위임이 아닌 강탈이다. 그렇다고 시민들은 이의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하튼 '빽'도 없고 돈도 없는 불쌍한 민중들은 그저 '만인에 만인의 투쟁'을 언제까지 이어가야 할 것인가? 이제 영원히 홉즈(Hobbes)가 상정한 리바이어던(Leviathan)은 오지 않고 와서도 안 된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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