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언제부터인가 어깨가 뻐근했다. 그러더니 덩달아 목까지 뻐근했다. 머리를 감으려고 숙이니 어깨, 목, 허리 이어달리기처럼 아픔이 이어졌다. 며칠 지나면 괜찮겠지 생각했지만 머리를 감을 때마다 힘들었다. 숙였던 허리가 안 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안 되겠다 싶어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물리치료실의 온돌 같은 따끈따끈한 돌침대에 누웠다. 쌀쌀했던 탓인지 몸이 축 늘어지고 이내 살짝 눈꺼풀이 무거웠다. 요즘 들어 이래저래 일이 쌓여 잠자는 시간을 줄었던 터였다. 분명 잠은 안 자고 눈만 살짝 감고 쉬어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커억!" 내 코고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이 깼다. 옆에 다른 사람이 있나 없나를 슬쩍 확인했더니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그동안 못 잔 잠과 돌침대 탓인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나보다. 뜨끈뜨끈, 얼었던 몸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선 돌침대를 끌어안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럼 달콤한 잠을 실컷 즐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난 잠이 참 많다. 혹여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피곤해서 그런가도 싶었다. 하지만 늦게 자나 일찍 자나 늘 잠이 많은 걸 알게 되었다. 가끔 아내랑 햇살이 들어오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졸음이 밀려와 애를 먹곤 한다. 따듯한 햇살이 얄미웠다. 하지만 햇살의 영향이 아니었다. 추운날도 여러 차례 잠이 쏟아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외모를 보면 적응을 잘 못할 것 같기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잠 하나는 끝내주게 잘 잔다. 게다가 생긴 것과 다르게 코도 엄청 잘 곤다. 가끔은 내 코고는 소리에 잠이 확 달아나기도 한다. 처음엔 누군가 옆에서 고는 줄 알고 놀란 적도 있지만, 다 내가 코고는 소리였다.


학창시절 친구네 집에 놀러가도 잠 적응 하나는 잘 했다. 그때는 친구들 끼리 모여 잠을 자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나만 홀라당 미리 잠들어 코까지 곯아댔으니 친구들이 좀 그랬나 보다. 한 날은 코고는 소리까지 녹음을 해서 들려주었다. 그때 내가 코를 고는지 처음 알았다. 친구들이 "더 세게…, 옳지" 라고 얘기하면 신기하게 난 더 코를 세게 고는 게 아닌가. 그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박장대소 했다. 그 웃음까지 녹음이 되어 우린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결혼을 하고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내가 찍어 놓은 사진이 하나 있다. 아이랑 나랑 나란히 누워 자는 모습이다.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모습인데 나도 아이도 참 편안해 보인다. 아내는 사진 아래 '나비잠'이라고 제목을 붙여 놓았다. 그러고 보면 잠에 대한 인상적인 우리말도 많다. 꽃잠, 노루잠, 멍석잠, 토끼잠 등등.

우리가 자는 잠은 인생의 3분의 1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래서 한 때는 잠자는 게 아까워 잠을 줄이려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피로를 풀거나 키가 크려면 충분히 자야 한다고 해서 그만 두었다. 특히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잠의 기능이 가장 활발한 시간이라고 하는데, 난 이때 가장 빛나는 눈으로 글을 쓰거나 책을 보느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아마도 내 잠들이 팔짱을 끼고 째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아, 그래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하루를 마치고 이불속에서 막 잠들기 직전이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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