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규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우리나라의 7개 사찰이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더니, 올 7월에는 '한국의 서원'이란 명칭으로 9곳의 서원(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옥산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필암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축하와 기쁨으로 작년 겨울의 사찰 순례에 이어, 올해에는 유산 등재 서원 탐방의 시작으로 소수서원을 찾았다.

행정구역 시(市) 명칭에 고을 주(州)자가 들어가는 전국 14개 도시들의 공립 관광지 요금 할인 혜택인 '동주도시 할인제'(신분증 확인)에 따라, 난생처음 입장료의 50%를 감면받고 보니 시작부터 기분이 좋다.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한국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설립하고, 후에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조정에 요청하여 명종으로부터 친필 '紹修書院'(소수서원) 현판을 하사받음(1550년)으로써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 국왕으로부터 편액·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은 서원)이 되었다.

서원 초입부터 아름드리 소나무들의 기세가 예사롭지가 않다. 거북등처럼 6각형 무늬 껍질의 수백년된 금강송들이 강학당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서원에서의 강의를 들으려 오랫동안 강학당을 바라보고 있어 '학자수'라 불리는 소나무들은 방문객의 옷깃을 절로 여미게 한다. 소수서원 입구의 울울창창한 솔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솔숲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죽계수(竹溪水)라고 부르는 서원 앞 개울 바위에는 이황이 썼다는 '白雲洞'(백운동)이란 흰 글씨와 주세붕이 썼다는 '敬'(경)이란 붉은 글씨가 음각되어 있는데, 여기서 敬은 '몸과 마음을 바로 잡으라'는 의미라고 하니, 글씨가 붉은 것을 보면 아마도 심장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퇴계는 개울 건너편 '취한대' 주변에 스물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고 오솔길 산책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전임지 단양을 떠나면서 따라오려는 사랑하는 관기 두향을 뿌리치고 그녀가 선물했던 매화만을 들고 왔다고 했는데, 서원 어디에서도 매화나무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안동 도산서원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470년전 퇴계의 오솔길을 걸으며 소나무와 매화를 좋아하고 산책과 사색을 즐겼던 이황을 생각한다.

마침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어서, 한국 영정 가운데 가장 오래된 안향 영정(국보 제111호), 안향이 원나라에서 가져왔다고 전하는 공자와 72제자상을 그려놓은 인물배열도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보물 제485호), 주세붕 초상(보물 제717호)의 진본을 감상하는 뜻밖의 행운도 누렸다.

'무너진 유학을 다시 닦게 한다'(紹修)는 뜻의 소수서원 현판을 다시금 바라보며, 근자에 들어 무너지고 훼손된 진실과 정의 그리고 정체성을 일으켜 세우자는 '重振(중진)'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새긴다.

서원은 오늘날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에 해당한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서슬 퍼런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서원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소수서원에 서서, 교육의 다양성과 선택의 자유를 무시하고 세계사의 흐름에도 반하는, 현 정부의 자사고 일괄 폐지 정책을 생각해 본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불의에 꼿꼿이 맞선 살아있는 선비정신에 힘찬 박수를 보내며 선비의 고장 영주를 다녀간다.

김규완 충북중앙도서관장
김규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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