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칼럼] 이민우 편집국장

해마다 찾아오는 '성탄절'은 겨울의 우울을 떨쳐버리고 새 시간을 맞는다. 특히 연말이 되면 마음속에 우울한 바람이 불어 겨울을 더욱 춥게 만든다. 성탄의 불빛이 거리마다 밝혀져 있다. 마음까지 환해지면 좋겠다.

크리스마스 트리도 성탄 특수를 기대한 유통가, 호텔, 레스토랑 외에는 보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는 트리를 장식한 집들이 많았지만 요즘엔 이마저도 드물다. 맞벌이 가구, 1인 가구가 늘고 저출산에 따른 어린이 감소의 여파다. 트리 대신 간단한 장식소품으로 대체하는 집들이 많다. 대형마트의 성탄용품 판매도 해가 거듭될수록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가로수 장식이 사라진 영향도 크다. 대로변 가로수마다 형형색색 전구가 달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살렸지만, 예산낭비 논란 끝에 중단됐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크리스마스 문화는 언제 도입됐을까? 19세기 후반 미국의 크리스마스 문화는 선교사들과 함께 국내에 들어왔다. 선교사들은 선물을 교환하고 가족과 함께 즐기는 성탄절 풍습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는 한국에서 복음을 소개하는 통로이자 교회의 절기로 지켜지게 됐다. 한국에 들어온 초기 선교사들이 근대 학교와 교회를 세우면서 자연스럽게 성탄문화가 한국에 스며들었다. 이들은 휴가철 본국의 사람들과 선물을 교환하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풍습을 이어갔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교육기관 '배재학당' 설립자 아펜젤러 선교사는 아이들을 모아 성탄절에 대해 소개했다. 당시 양말에 선물을 담아 학생들에게 나눠줬는데, 아이들은 산타클로스가 준 선물로 알고 기뻐했다고 한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이 날 첫 여성세례를 베풀기도 했다.

1885년 의료선교를 펼친 스크랜턴 선교사는 그가 창설한 이화학당 학생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미국인 여선교사 매티 윌콕스 노블은 1893년 성탄절에 자신의 집에 50여 명의 한국 부인들을 초청해 복음을 전하고 선물을 줬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평소 고마웠던 사람과 교인을 집으로 초청해 성탄절을 보내며 그 의미를 전하고 음식을 베풀었다고 한다.

한국교회와 기독교 학교들에서 성탄절을 절기로 지키게 된 것은 1895년부터 1900년 사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크리스마스는 연말의 아름다운 '리추얼'이다. 리추얼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사회행위이다. 때로는 기계적으로 반복된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오후에 퇴근해 저녁을 먹고 그냥 눕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지는 것이 행복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직업과 직장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출근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냥 시계추가 흔들리듯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하루 세 끼 먹는 것은 그냥 끼니때가 되어 먹는 것이다. 세 끼가 걱정거리가 된다거나 가치와 의미를 반드시 물어보고 감격해 눈물 콧물 쏟아가며 먹는 식사라면 아마도 행복한 형편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운 삶이지만, 선을 베푸는 일을 아무것도 아닌 양, 그저 반복되는 일상인 양 여긴다면 이것이 행복한 삶이다. 의미와 가치를 물을 것도 없이 그냥 해야 되는 일이니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한다면 아름다운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사랑도 자기를 버려 형제를 살리는 '자기희생적 사랑'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랑도 이 사랑보다 진실하고 희생적이고 참된 사랑은 없다. 이 사랑이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이 사랑이 이기적인 우리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성탄절은 '나눔의 계절'이다. 손을 펴서 나눔으로써 나눔의 행복을 만끽하자. '가장 낮은 데로 임한다'는 게 성탄의 의미다. 연말, 우리 주변에 있는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한 배려와 나눔의 성탄절이 됐으면 한다.

이민우 부국장겸 사회·경제부장
이민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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