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결혼해서 10년이 지나도록 자녀를 두지 못한 뒷골 김 서방 내외가 예수를 믿으면 하느님이 아들을 보내줄 지도 모른다는 이웃집 박 권사 말을 믿고 교회를 나가며 정성을 다해 헌금도 많이 하면서 아주 열심히 기도를 한다. 제발 아들 하나만 낳게 해달라고.

몇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믿음이 부족한 것으로 알고 이번엔 소원을 잘 들어주는 영험한 부처가 있다는 절을 찾아간다. 공을 들이느라고 아침저녁으로 부처를 찾아 시주도 많이 하면서 불공을 드린다. 딸도 좋으니 손 하나만 보게 해 달라고.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어도 손을 보지 못한 김 서방 내외가 이번엔 방법을 바꿔 용하다는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하니 아내에게 문제가 있다며 수술로 치료를 받으란다. 비용을 많이 드려서 하라는 대로 다해도 소식이 없어 종합병원을 찾으니 아무 이상이 없다며 기다려 보란다. 그래서 이번엔 천지신명님, 옥황상제님, 부처님, 예수님, 조상님, 설날 새벽의 해님과 정월 대보름의 달님에게 골고루 기원을 한다. 애꾸라도 좋으니 그저 점수만 해 달리고.

스스로 돕는 자부터 차례로 도와주겠다고 금석같이 약속한 하느님의 착오로 순위에서 밀렸는지 오십이 넘어도 소식이 없자 아내의 초조가 입양의 시류를 탄다. 가깝고 먼 조카들에게 콜을 걸었지만 미래가 불투명해서 그런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가진 것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또 한 해를 보내는 12월의 끝자락에 부부가 친정아버지(丈人)의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하고, 친정어머니가 입원한 요양병원을 찾아 준비한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같이하고 돌아왔다.

밤중의 빈집에 불이 켜져 있다. 이상하다. 잃을 것이 없는 집이라 대문이 없으니 언제나 문이 열려있다.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니 썰렁한 방 한가운데에 쌍둥이 유모차가 놓여있다. 커버를 밀치니 아이 둘이 젖병을 물고 누워있다. 아기들을 덮은 포대기 위에 흰 봉투가 놓여있다. 열두 줄로 쓴 편지다.

'천벌 받을 것을 각오하고 찾아왔습니다. 자식을 간절히 기다린다는 소식 듣고 저의 네쌍둥이 중에서 뒤로 남매를 보내드립니다. 어렵고 힘드시겠지만 잘 키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는 멀리 이민을 갑니다. 찾지 말아 주십시오. 저희도 찾지 않겠습니다. 우선 필요할 것 같아 양육비 조금 놓고 갑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많이 하겠습니다. 염치없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사주는 올해 11월 11일 11시 18분과 아들은 27분입니다. 못난 애 엄마가 용서를 빕니다.'

김 서방이 문자 쓴다는 말 중에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란 말이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집중해서 일을 하기에 그가 손을 대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다시 손을 대지 않아도 될 만큼 깔끔하게 일을 한다. 그래서 부르는 곳은 많지만 돈을 모으지는 못한다. 그런 착한 마음씨의 아름다운 향기가 아주 멀리까지 퍼져나간 모양이다.

그날은 아기예수가 세상에 온 성탄일이었다. 착한 두 사람에게 천지신명님, 옥황상제님, 부처님, 예수님, 조상님, 해님과 달님이 합동으로 마음을 모아 보내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한 말을 약속한 대로 꼭 실천했다. 고맙다. 그리고 존경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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