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이 되어서도
하늘의 별이 되어서도
  • 중부매일
  • 승인 2019.12.2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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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이난영 수필가

겸허한 마음으로 저녁노을을 바라본다. 인자한 어머님의 마음이 내려앉았기 때문일까. 하늘빛의 찬란한 향연이 오늘따라 더욱 빛나 보인다. 어머님 때문에 글을 쓰고 등단하고 문학상까지.

자애롭던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친정 부모님 성묘까지 다녀오려면 서둘러야 하는데 발짝이 떨어지지 않는다. 맏며느리 사랑이 유별나셨던 어머님 은혜에 감읍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일곱 살 손자도 덩달아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하늬바람이 기쁘면서도 송구스러운 내 마음을 다독인다. 험준한 에움길을 내려오느라 힘들 텐데도 내 손을 꼭 잡으며, 할머니 조심하라는 손자가 사랑옵다.

어느새 서쪽 하늘에 개밥별이 보인다. 어린 손자가 있어 집으로 올까 생각했으나 내친김에 친정 선산으로 향했다. 고향을 떠난 지 50년, 인근에 산업단지로 인해 공장이 많이 들어서서 조금 복잡하지만, 낮에는 한 번도 길을 헤맨 적이 없었는데 밤이 되니 모든 게 낯설어 어디가 어딘지 구분할 수가 없다. 내비게이션을 찍고 가도 엉뚱한 곳이 나오는데 물어볼 사람조차 없다. 한참을 헤매다 찾았을 때는 등줄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어둑어둑한 늦저녁에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운전한 아들에게는 미안하나 마음은 훈훈했다.

사람들은 산이나 바다에서 삶에서 찌든 심신을 맑은 정기로 씻어낸다고 한다. 나는 답답한 일이나 기쁜 일이 생기면 먼저 양가 부모님 산소를 찾는다. 부모님 산소에 다녀와야만 마음이 정화된다. 오늘도 생각지 못한 문학상 수상 소식에 부끄럽지만,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어디까지일까? 대개 눈을 감기 전까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하늘의 별이 되어서도'라고 단언한다. 내게 큰일이 있을 때마다 친정엄마가 꿈에 나타나신다. 엄마를 보고 반갑게 맞이하면 영전을 한다든가 생각지 않은 큰 상을 타게 되고, 근심스러운 듯 바라보시면 주위를 한번 살펴보라는 암시였다. 이번에도 엄마를 반갑게 맞이하고, 분에 넘치는 큰상을 받게 되었다. 자식 향한 끝없는 사랑 어찌 갚아야 할지.

고결한 어머님 사랑도 하늘처럼 높다. 살아생전 친정엄마와 어머님은 친자매처럼 한올졌다. 저승에서도 가깝게 지내시는지 내가 크고 작은 수술을 할 때마다 함께 나타나신다. 쉽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대쪽 같은 성품끼리 돈독했던 것은 두 분 모두 지혜로운 분들이라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기 때문이지 싶다.

사돈지간이 지란지교보다 더 도타운 정은 매화 향기처럼 그윽했다. 두 분의 다정함은 내가 공직생활에서 꿈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가진 것이 부족해도 행복을 음미하다가 친정엄마가 먼저 영면하셨다. 한쪽 팔을 잃은 듯 허전해하시던 어머니는 결국 병을 얻으셨다. 엄마보다 10여 년 더 사셔서 90세에 영면하셨지만, 8년을 병상에 계셨으니 그 상심 미루어 짐작한다.

어머님은 희수(喜壽)에 모시로 인생 2막을 시작하셨다. 30여 년 전에는 개량한복이 흔하지도 않았지만, 모시개량한복은 더더욱 없었다. 소일하시라고 사다 드린 모시로 내 개량한복을 만드셨다. 사랑과 정성으로 만들어 주신 모시옷을 입고 출근하면 아름답고 우아하다며 동료들이 중전마마라고 불렀다. 어머님의 솜씨를 자랑하고 싶어 글을 써서 방송국에 보냈다. 라디오 방송을 타면서 자신감을 얻은 어머님은 바늘과 실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에 더욱 빠져 드셨다. 솜씨가 점점 늘자 가난한 이웃 노인들에게 수의 만들어주는 재능기부를 하셨다. 모시를 다루면서 보이지 않는 마음에도 고마움을 느낀다며, 정다운 이웃들과 오붓한 웃음을 나누셨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동분서주하던 어머님은 수어지교의 사돈이 명을 달리하자 짝 잃은 외기러기처럼 힘을 잃었다.

4대가 함께 복닥거리느라 그 흔한 가족여행 한번 가본 적이 없다. 할머님 영면하시고, 가족여행을 계획했으나 쉽지가 않아 차일피일 미루었다. 아들이 입대하여 면회를 핑계 삼아 여행을 계획했다. 벼르는 제사에 냉수 한 그릇 못 떠 논다고,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옴짝달싹 못 했다. 어쩔 수 없이 집안에 단풍을 모아놓고 가을을 즐기는데 어머님 병문안 오신 시고모님이 내가 바빠서 마당을 쓸지 못하는 줄 알고, 낙엽을 모두 쓸어 쓰레기차에 버렸다. 공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없다더니 허허로움을 달래려고 '잃어버린 가을'이란 작품을 써서 공무원문학협회에 응모한 것이 장원으로 당선되었다. 어머님이 아니었으면 작가의 꿈은 이루지 못했을 것, 수필가라는 이름은 어머님이 주신 선물이지 싶다.

정갈한 모시옷을 보면 어머님이 떠오른다. 천연염색 패션쇼에서 모시옷을 입은 출연자를 보는 순간 어머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그리움에 유품이 된 모시이불을 꺼내 보며 '바람을 덮다'를 쓴 것이 큰 상을 타게 되었다.

어머님의 훌륭한 솜씨는 글을 쓰게 만들었고, 병간호하며 고뇌는 등단의 기쁨, 유품을 통해 문학상까지 타게 되었으니 어머님의 은혜는 하늘과 같다. 숨겨둔 보석 같은 삶의 편린보다는 힘겨운 등짐만 졌던 어머님! 하늘의 별이 되어서도 자식 사랑에 여념이 없는 고마운 어머님, 이제는 편히 영면하소서!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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