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부터 가물가물한 기억의 초등학교 친구들로부터 간간히 전화 연락이 온다. “너 누구 맞지? 나 아무갠데 왜 성당옆 작은 개울가 근처에 살았었지” “아 맞어….” 아이들 웬만큼 커 육아에서 해방되고 얼굴에 주름선이 살살 패여지니 일년에 한번 개최한다는 시골초등학교 동창들 운동회 모임에 꼭 오라는 전갈을 받게 되면서 받는 질문은 “너 지금 뭐하니?”다.

그도 그럴 것이 30여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속에서 누구는 뭐가 되어있고 누구는 무슨 일 한다더라 하는 일을 확인하는 것은 예상치 않은 깜짝쇼와 같은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해지는 사안이다. “왜 우리를 그렇게 귀롭혔던 거시기 그 말썽꾸러기 있잖니. 걔가 그렇게 잘나간댄다. 외국에서 돈도 무척 많이 벌어 작년엔 우리 동창들에게 팍팍 쐈대는 것 아니니. 또 학교앞 문방구점 아들있잖아. 그때도 공부를 잘했는데 무슨 고시에 합격해서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

“너 지금 뭐하니?”를 확인하는 우리의 수다속엔 확실히 “너 성공했니?”와 같은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 처음엔 불쑥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나 그냥 그렇지 뭐, 사회단체 활동을 해” “그게 뭐하는 건데, 돈은 나오니? 너 옛날에 뭐가 되고 싶었지?” “… (만화가게와 빵가게 주인인데...)” 친구의 들뜬 수다속엔 그래도 선생님 정도는 할 줄 알았던 네가 별 볼일 없구나 하는 약간의 실망감이 맴돈다.

확실히 그랬었다. 100억수출과 1000불소득의 목표아래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살아온 우리는 나라의 경제발전과 개인의 성공이 생의 중요한 목표며 방향이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국가와 사회에 봉사할 훌륭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면서 판사,검사,공무원,학자등등의 직업군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시곤 했다.

무엇인가가 되어있거나 새롭게 무엇인가가 되기가 어정쩡한 40대 중반에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 지금 성공했니?”

소위 사회운동영역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히면서 내가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지위와 지식, 의식은 매우 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내용없는 으름장을 놓으며 유치한 수준으로 공무원을 질책하는 의원들, 민선자치 시대의 주민주체의 철학과 소신은 아랑곳없이 중앙정부의 눈치만 보는 공무원들, 가르침은 실종되고 정보 전달자로 전락한 존경받지 못하는 교수들….

반면에 일상의 학습이 체화되어 정신세계가 풍부해 몇마디 대화를 나눠도 주변 사람을 덩달아 풍요로와지게 하거나, 남아출석번호 우선 순위라는 규정속에 내재된 성차별 관행에 흥분하며 핏대를 내는 어느 아빠,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해내는 친환경 농업보호와 소비자 생활개선을 위해 동네 주부들과 분투하는 주부들, 동네 문화의 실종을 아쉬워하며 시간 틈틈 내며 아이들을 자전거를 태워 신나게 놀아주는 방과후교실 골목대장등등은 내가 만나는 진짜 존경할만한 민주시민들이었다. 비록 화려한 감투와 직함은 없지만 삶의 바름과 풍요로움,여유,즐거움을 창조해내며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민주시민들이야말로 진짜 성공한 사람들 아닐까?

“너 지금 뭐하니?”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누구라도 “나 성실한 민주시민야, 대단히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단다”라고 말할 일이다. 야인(野人)의 퍼지션에서 표출하는 정당한 발언과 상식적인 민주시민운동이야말로 부패하거나 군림하지 않은 진정한 권력이 아닐까? /충북여성민우회대표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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