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에게 / 최문자

사랑할 때는 서로 오렌지이고 싶지
먼 곳에서 익고 있는
어금니가 새파란

이미 사랑이 끝난 자들은
저것이 사랑인가 묻는다
슬픈 모양으로 생긴 위험하게 생긴 느린 비가 부족해서 파랗게 죽을지도 모르는 저것
사랑하기에 좋도록 둥근, 바람에 대해 쓰러지기 좋은 죽기에도 좋은 저것

우리는 쓰러지기도 전에 겁이 나서

오렌지는 너무나 굳게 오렌지를 쥐고
나는 어디에도 없는 나를 쥐고

짐승처럼 나빠지고 싶은 오 두려운 여름, 거짓으로 빚어지는 둥그런 항아리 같은 저것
저것의 안을 깨뜨리며
죽었던 여름이 우리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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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다 저물어가고 우리들의 사랑도 이제 어떤 형태로든 저물어 간다. 사랑이란 오렌지처럼 달콤하고 '사랑하기에 좋도록 둥근' 모양이지만 때로는 '비가 부족해서 파랗게 죽을지'도 '바람에 대해 쓰러지기 좋'기도 한 것이란다. 오렌지, 또는 사랑은 그것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굳게 쥐고 있지만 어떤 그것은 '거짓으로 빚어지는 둥그런 항아리'일 뿐이다. 그리하여 모든 지난 사랑은 '죽었던 여름'처럼 시끄럽고 무성하게 우리를 밟고 지나간다. / 최호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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