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막사에 들어선 이방인이 신기했던가. 여기저기서 바라보는 눈망울들. 자꾸만 바라보니 생김새도 다 다르다. 요즘은 스위치만 누르면 사료가 자동으로 내려오는 시스템이다. 알갱이 사료를 먹는 소를 보며 어릴 적 쇠죽 쑬 때가 생각난다.

해가 설핏 넘어가는 늦은 오후, 사랑채에 걸려있는 쇠죽가마에 물을 채운다. 주로 쌀뜨물과 설거지한 물을 넣었다. 여물로는 볏짚이나 콩깍지, 고구마 줄기, 때론 썩어가는 호박이나 벌레 먹은 콩, 약간 시어버린 음식을 넣기도 했다.

중학교 때 십리길 걸어 학교서 돌아오면 주로 보리쌀을 삶아서 밥을 하였다. 하루는 밥도 해야 하고 쇠죽도 써야하니 마음이 바빴다. 부엌에 밥을 앉혀놓은 뒤 사랑채 솥에 물을 붙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다. 마당 한 귀퉁이를 바라보니 초등학교 다니는 남동생이 "내 손가락 내 손가락"을 외치며 풀섶을 헤치고 있다. 누나를 도와준다고 혼자서 작두를 썬 모양이다.

작두는 여물을 먹이는 사람과 작두자루에 발을 올리고 여물을 써는 사람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자칫하면 손가락을 자르기 때문이다. 둘이 해도 위험한 일을 초등학생 혼자서 한손은 여물을 넣고 한손으로 작두를 내리다가 일이 벌어졌다.

아랫마을에서 일을 하는 어머니한테 한순간에 달음박질 쳤다. 밭을 매던 어머니는 밭고랑을 뛰며 울부짖는 나를 보고 뱀에 물렸느냐고 소리쳤다.

어른들이 마당에 모여 들어 서둘러 동생은 병원으로 갔고, 난 사랑채 방 한구석에서 떨고 있었다. 간간히 "인딕이가 그랬댜?"하는 소리도 들렸다.

지금도 찬바람이 불 때면 손가락 마디 하나가 없는 남동생은 손이 시리다고 한다. 끝내 풀섶에서 손가락을 찾지 못했던가. 난 무서워서 지금까지도 손가락의 행방을 묻지 못하고 미안한 마음만 가슴 가득 달고 산다. 밭에서 일을 할 때이고 풀을 먹이로 줄때면 굳이 쇠죽을 안 쑤어도 될 것 같았는데 어쩌자고 가마솥에 물을 부었는지….

겨울이 되면 타작하고 쌓아놓은 볏짚으로 날마다 쇠죽을 쑤었다. 마지막에 쌀겨 한바가지는 꼭 넣었다. 몽당비를 깔고 앉아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깻단이나 볏짚을 태울 때면 짬이 안 나지만 장작이라도 아궁이에 넣은 날이면 부지깽이로 솥뚜껑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러댔다. 무슨 노래인지는 잘 기억이안 나지만 주로 트로트였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으니 있는 대로 소리 지르며 부르다보면 김이 올라온다, 그러면 뚜껑을 열고 낫처럼 구부러진 쇠죽갈고리로 쇠죽의 아래위를 뒤집어 준다. 이때쯤이면 쇠죽을 다 쑤었다는 표시다.

소여물 삶는 구수한 냄새를 맡은 어미 소의 '음매~' 소리가 들린다. 솥뚜껑을 덮고 한참동안 뜸을 들인 후, 여물바가지로 쇠죽을 대야에 퍼 담아 외양간에 있는 구유에 퍼다 주면 된다. 고맙다는 표시인지 커다란 눈을 끔벅이며 여물을 맛나게 먹은 소가 되새김질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쇠죽 끓이는 냄새가 그리울 때도 있다. 냄새가 향긋하다거나 좋은 건 아니었는데 특유의 냄새가 그리운 거 보면 그때 그 어린 시절이 그리워서 일게다. 눈발이 간간이 날리는 날, 부엌에서 어머니가 저녁 짓는 소리가 들리고 난 사랑채 아궁이에 앉아 불을 때던 그 장면이 삽화처럼 기억되어 있다. 이따금 천방지축 마당을 뛰어 다니는 송아지를 부르는 어미 소의 '음매~' 소리도 있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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