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한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이 즈음 사람들은 앞서 계획했던 일들을 차분하게 갈무리하며서 소망의 새해를 꿈꾼다. 그런데 이것들이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조금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도 풍요로운 가운데 분명 소외되고 어려워하는 이웃도 있다.

이런 생각끝에 김옥림님이 '향기가 나는 사람'이란 글이 떠오른다.

'향기가 나는 사람은 /남을 편안하게 하고 / 배려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좋은 분위기를 위해 서라면/ 자신을 양보할 줄 안다// 향기가 나는 사람은/ 늘 같은 모습을 하고 / 변덕을 부리거나 이기적이지 않으며 /나와 너의 관계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이 좋은 공존을 하는 지혜가 번뜩인다.'

음미해 볼수록 한구절 한구절들이 마음을 저리어 오게 한다. 무릇 여기서 향기가나는 사람이란 사람냄새가 나는 사람,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사람, 자신이 하는 일을 아무도 모르게 기쁨으로 알고 하는 사람,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 12월 초순경 제천시청 사회복지과 이웃돕기 담당자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와 "연탄 보관증을 팩스로 보낼게요."라는 한마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윽고 연탄 판매업체에서 보내온 보관증에는 연탄 2만장(약 1천500만원 상당)을 기탁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담당자가 업체에 기탁자를 수소문해 보았지만 기탁하는 분이 '제천의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당부의 말만 전하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해마다 연말에 제천시에서 얼굴과 이름을 알리지 않고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인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선행이 무려 17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제천의 얼굴 없는 천사는 누굴까? 세간의 관심이 커지자 올해는 아예 대리인을 제천시청에 보내지 않고 팩스로 연탄 2만장을 보내와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우리 주위에는 나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따스한 정을 나누는 향기기 나는 분들이 많이 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폐지와 공병을 모아 노인회관에 후원하는 사람,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주민센터직원, 부모없는 아이를 입양시켜 돌보는 회사원 부부, 택시를 운전하며 껌을 판 기금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운전기사들, 일주일에 한 두번씩 꾸준히 봉사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 장애인으로 다른 장애우들을 보살피는 여성, 휴일마다 노인들을 찾아 머리를 감겨주는 미용사들이 우리 주위에 있어 밖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도 내심은 따듯해진다.

그렇다. 오늘날 치열한 경쟁시대를 살다보니 사람들의 마음이 메마르고 강팍해지는 것 같다. 그러기에 자칫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디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비록 많이 가지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나누어 주거나 자신의 시간을 내어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애쓰고 수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야 말로 향기나는 사람이고 이름없이 빛도 없이 알뜰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다시한번 이웃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살아가는 소박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삶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한해를 갈무리하고 새로 시작하는 이때 귀한 분들의 향기로운 마음이 우리의 이웃과 우리의 삶을 훈훈하게 한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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