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칼럼] 이민우 편집국장

연말연시는 인사철이다. 신문 동정면 한쪽에는 승진자 명단이 가득하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축하 인사가 쏟아지겠지만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탈락자들은 씁쓸하고 심지어 자괴감((自愧感)마저 든다.

승진자와 탈락자에 연락을 취해볼까 생각하다가도 행여 실례가 될까 싶어 망설여진다. 그의 주변 동료들에게 묻기도 조심스럽다. 탈락자들이 머지않은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묵직해진다.

흔히 우스겟소리로 인사철만 되면 청주시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을 보는것 같다"는 소리를 자주들을 수 있다. '내편, 내쪽만 갖고 간다'는 식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인사 시즌이 몰린 연말이 되면, '초조·불안·환호·좌절'이 교차한다.

청주시가 지난 달 30일 승진내정 인사를 발표하자 또 다시 내부에서 술렁였다. 한범덕 시장이 취임 후 계속 자신의 출신고인 청주고 출신자에게 승진특혜를 주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인사에서 4명이 서기관(4급) 승진 내정이 됐다. 4명 중 2명이 청주고 출신이다. 서흥원(상당구청장) 행정지원과장의 경우 오는 6월 공로연수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6개월짜리 구청장'이 현실화됐다. 구청 업무파악 후 바로 공로연수에 들어가 또다시 인사를 단행해야 한다. 전용운 복지정책과장(교육)도 청주고 출신이다. 이 때문에 굳이 서 과장을 서기관으로 승진시킬 이유가 있느냐는 것과 연공서열을 중시하려면 서 과장보다 근무평정(근평)이 앞선 김태호·박명옥·이미호 등 다른 과장급 인사들도 같은 대우를 해줘야 할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정일봉 행정지원과장(인사과장 역할) 발탁도 청주고 출신이어서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시청 직원들은 "청주고 출신 아니면 승진은 바라지 말라"는 자조 섞인 비아냥도 나돌고 있다. 시는 이번 승진자 결정에 대해 "조직의 화합과 안정도모를 위해 상생발전 합의사항을 존중했다"며 "4∼5급은 동료 및 하급공무원으로부터 존경받고 신뢰감이 두터운 책임자로서 업무실적, 경력, 능력, 인품 및 적성 등을 중점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 직원들은 매번 단행되는 인사에 대해 "원칙이 없다"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인사철만 되면 근거없는 소문까지 무성하게 나돈다. '人事(인사)가 萬事(만사)'라는 말이 있듯이 잘 된 인사는 모든 일을 순조롭게 하고 국가와 사회를 살찌우지만, 그렇치 못한 인사는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선인들은 옛 부터 국가를 다스리는데 제1의 원칙으로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를 삼았다. 인사는 시장 고유의 권한이다. 승진 시기가 됐다고 모두를 배려할 수는 없지만, 원칙을 세워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하고 요구된다. 물론 공직사회에서는 기강 확립과 분위기 쇄신이 매우 중요하다. 습관과 타성에 젖어서는 안되며, 관행이나 편견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를 해소하는 방법이 '인사'일 것이다.

연말이면 무심히 받아든 인사명령지가 한 사람의 생을 바꿀 수 있고,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운명의 페이퍼'(?) 라는 생각이든다. 그 인사명령지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땀이 숨어 있을 것이고, 또 아픔이 있을까. 새해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떠나야 할지 모른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누군가가 들어와 채우고, 그들 역시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퇴직을 하고 나면 마땅히 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퇴직을 예측하고 사전에 준비를 해두지 않는 한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기업, 기관 등 모든 퇴직자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다보니 눈높이를 낮추어도 자리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30~40년 꽃같은 청춘을 조직에 바치고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적재적소' 인사원칙이 조직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민우 부국장겸 사회·경제부장
이민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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