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 두 바퀴로도 살만한 세상 만들어야죠"
87년 시위진압부대 경험 군사전문가 길걸어
격식 내려놓은 툇마루 같은 정치인 되고파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이 청주세광중학교 재학시절 자전거 등·하굣길이었던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향교 앞 대성로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옛 추억을 잠겨 힘찬 페달을 밟고 있다. / 김용수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이 청주세광중학교 재학시절 자전거 등·하굣길이었던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향교 앞 대성로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옛 추억에 잠겨 힘찬 페달을 밟고 있다. / 김용수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뚜벅이다. 운전면허가 없다. 버스로 출퇴근을 하고, 걸어다니면서 세상을 만난다. 서민들이 걷는 길을 함께 걷고, 서민들이 바라보는 곳을 같이 보면서 산다. 그래서 그는 서민의 삶을, 서민들의 마음을, 서민들의 아픔을 잘 알고 있다.

서민들과 격의없이 어울리는 김종대(54) 정의당 국회의원(비례대표)의 얘기다. 권위, 가식, 겉치레가 없기에 가능하다.

"고향집에 가면 가장 멍때리고 싶은 장소가 툇마루잖아요. 치유할 편안함을 주는 장소, 거기에 앉아 해가 뜨고 지는 것도 보고, 찾아오는 이들도 만나고 '소박하지만 세상이 다 보이는 장소'죠. 거창한 약속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얘기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는 '툇마루' 같은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이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이야기하며 활짝 웃고 있다. / 김용수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이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이야기하며 활짝 웃고 있다. / 김용수

뚜벅이생활 덕에 틈틈히 책을 접할 기회를 얻는다. 일주일에 적어도 1권씩 읽는다. 독서는 그에게 혁신아이디어의 '샘'이다. 책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장성 35인을 인터뷰해 천안함 침몰사건 등을 파헤친 '서해전쟁', '위기의 장군들', '안보전쟁' 등 7권의 저서가 있다.

"특히 대기자들이 쓴 책을 좋아해요. 언론인으로서 치열한 취재정신과 진실을 향한 열정으로 쓴 대작들이죠. 밥 우드워드 '플랜 오브 어텍', 아사히신문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우주로부터의 귀환' 등이 명저에요."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하는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이  가방속의 책을 꺼내 읽고 있다. / 김용수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하는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이 가방속의 책을 꺼내 읽고 있다. / 김용수

그는 기자로서도 활약했다. 2007~2015년 8년간 국방잡지 '디펜스21+' 편집장을 맡았었다.

김 의원의 경쟁력은 '민간출신 국방전문가', '진보정당의 안보전문가'. 제14~15대 국회 국방위원회 보좌관,  2003~2005년 대통령비서실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잡지 '디펜스21+' 편집장 등 국방ㆍ안보분야에서 내공을 쌓아왔다.

"'베스트원'(best oneㆍ최고)이 아니라 '온리원'(only oneㆍ유일)이 돼야죠. 남을 이겨서 1등 하는 '베스트원'은 경쟁의 산물이고 비극의 결과이지만, '온리원'은 창조성의 산물입니다."

정치에서도 '온리원'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청주정치권의 3무(無)를 제시하면서 '온리원'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청주의 3無는 여성 지역구 국회의원 전무, 청년정치인 전무, 진보정당 지역구 당선 전무다.

오는 4월 15일 제21대 총선에서 청주시 상당 선거구 출마를 선언한 김종대 국회의원이 청주향교 앞에서 개발과 보존의 문제에 직면한 청주상당구 지역문제 해결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 / 김용수
오는 4월 15일 제21대 총선에서 청주시 상당 선거구 출마를 선언한 김종대 국회의원이 청주향교 앞에서 개발과 보존의 문제에 직면한 청주상당구 지역문제 해결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 / 김용수

"청주상당구는 험지라고 누구나 얘기하는데 제가 당선되면 '온리원'이 되는 거죠. 당선이 못되더라도 불꽃같이 존재감을 깨우는 정치를 했다면 그것도 '온리원'입니다. 불가능·불확실성에 도전하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충북 정치1번지 청주상당 출마를 일찌감치 선언한 김 의원은 상당구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인터뷰장소로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청주향교 일대를 선택한 것은 청주 세광중학교 시절 등하굣길이기 때문이다. 수동 집에서 탑대성동 학교까지 자전거로 20여분 거리를 좁은 골목골목을 누비며 다녔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이 청주세광중학교 재학시절 자전거 등·하굣길이었던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향교 앞 대성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 김용수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이 청주세광중학교 재학시절 자전거 등·하굣길이었던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향교 앞 대성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 김용수

40년만에 마주한 청주상당구 골목의 멈춰진 시계 앞에서 그는 상실감과 반가움의 감정이 교차한다.

"청주 상당구는 골목골목이 연결돼있는 '미로' 같아요. 어릴 적, 이 무한한 상상속 바다를 헤엄쳐 다녔죠. 지금은, 옛 모습 그대로여서 반갑다는 생각과, 한편으론 버려졌다는 상실감에 양면적 생각이 듭니다. 개발입장에서 보면 이곳이 낙후성의 표본이지만 보존입장에서 보면 보물덩어리입니다. 떠난 자와 남은 자의 운명이 극명하게 남아있는 곳, 보존과 무관심의 공간을 우리가 살려야 합니다."

유년시절, 그는 겁 많고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다. 키가 작아 늘 교실 맨 앞자리를 지켰다.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때 청주로 이사와 주성초등학교를 다녔다. 이후 세광중, 청주고를 졸업했다.

김종대 의원의 청주 세광중 졸업사진. / 김종대 의원실 제공
김종대 의원의 청주 세광중 졸업사진. / 김종대 의원실 제공

"출석 부를 때 대답하면서도 가슴이 떨렸던, 소심하고 겁많은 소년이었어요. 발표는커녕, 친구들 리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죠. 송진우 한화이글스 코치와 중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어요. 송진우는 그때도 영웅이었어요."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엄격한 가정교육을 하셨다. 덕분에 올곧게 자랐다. 연세대 경제학과 84학번으로 입학해 사회개혁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뒤로 아버지와 이념갈등을 빚기 일쑤였고 등록금 지원이 끊겨 2학년때 군대를 가게 된다. 상병 때 87년 6월 민주항쟁을 맞게 되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는다.

김종대 의원 군 복무 시절 모습. 연세대 경제학과(84학번) 2학년때 군 입대해 상병 때 87년 6월 민주항쟁을 맞게 된다. / 김종대 의원실 제공
김종대 의원 군 복무 시절 모습. 연세대 경제학과(84학번) 2학년때 군 입대해 상병 때 87년 6월 민주항쟁을 맞게 된다. / 김종대 의원실 제공

"시위진압부대였어요. 인하대 담당. 내가 진압군으로 나갈 수 있다는 극한의 두려움이 있었죠. 80년 광주의 계엄 때문에 인생이 바뀐 내가 '제2의 광주사태'에 진압군으로 나간다는 것이 너무도 큰 충격이었어요. 다행히 계엄선포는 안됐지만 계엄사태에 출동할 핵심부대에서 근무한 것을 계기로 군사전문가의 길을 걷게 된 거죠."

군 제대와 동시에 한반도 평화운동, 군대 민주화운동을 시작한다. 육사 생도 교과서부터 군 조직과 국방 관련 책들을 파고들었다.

그러던 92년 김대중 민주당 총재가 14대 총선을 앞두고 야당 최초로 육사 출신 임복진 장성을 영입했다는 기사를 보고 무작정 그를 찾아가 일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그리고는 93년부터 7년간 제14~15대 국회 국방위원회 보좌진으로 일하며 '국방전문가'로 내공을 키운다.

김종대 국회의원이 옛 충북도지사 관사를 리모델링한 충북문화관을 걷고 있다. / 김용수
김종대 국회의원버스로 출퇴근을 하고, 걸어다니면서 세상을 만난다. 서민들이 걷는 길을 함께 걷고, 서민들이 바라보는 곳을 보면서 산다. / 김용수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율곡비리 사건, 하나회 척결, 12·12사태 진상규명 등 일이 쏟아졌어요. 새벽 3~4시가 돼야 퇴근할 수 있었지만 그 역사의 대전환의 중심에 국회 국방위원회가 있었고 거기에 제가 함께했던 것은 천재일우였습니다."  

국방위 보좌관 시절은 국방전문가 김종대의 정체성을 결정한 시기였다고 강조했다. 이후 독립해 군사평론가의 길을 걷게 된다. 민간인 출신 군사안보전문가 라는 희소가치 때문에 그때부터 언론섭외 1순위였다. 그때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를 만나게 되고, 2001년 지지율 1%였던 노무현 후보의 국방 개인교사를 1년간 맡게 된다.

2002년 12월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방전문위원, 2003~2005년 대통령비서실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2005~2007년 국무총리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을 맡으며 국회·청와대·정부 참모의 국방전문가로 우뚝 올라선다.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이 유년시절 등하굣길로 매일 지나쳤던 청주향교를 걸으면서 청주시 상당구를 먼발치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 김용수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이 유년시절 등하굣길로 매일 지나쳤던 청주향교를 걸으면서 청주시 상당구를 먼발치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 김용수

"정의당에 입당했을 때(2015년) 제일 섭섭해한 사람이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였어요. 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낙선후 저를 몇번 불러서 미래발전연구원 이사직을 제안했고 그래서 맡았고, 이후에도 몇번 만나 막걸리를 나눠 마셨죠."

노무현·문재인 등 민주당과 인연을 맺어온 그가 정의당에 입당한 건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에게 10분만에 설득당했어요. 노무현과의 첫 만남과 너무 닮았어요, 영민함, 균형감각, 단호함이. 고민은 오래 해도 결정의 순간에는 10분 이상 걸리지 않아요. 결정은 'just time', 적시성이니까. 한 박자 일찍 결정하는 게 경쟁력이죠."

그 어떤 결정에도 가족들은 그를 믿어줬다. 비록 반대는 할지언정. 한살 아래 아내와는 친구결혼식 피로연에서 신랑친구로, 신부친구로 만나 3년뒤 같은 결혼식장에서 결혼했다. 94년 스물아홉이었다. 아내는 충북대 85학번으로 역사교사다.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이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골목길에서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장난스러운 포즈를 연출하고 있다. / 김용수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이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골목길에서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장난스러운 포즈를 연출하고 있다. / 김용수

"낙천주의에, 빈틈을 인정하는 가족입니다. 제가 정의당에 입당했을 때 우리 부인이 이불 뒤집어쓰고 뭐라했고 국회의원에 출마한다니까 우리 딸이 반대하고…. 가족이 마지막 재판관인데 그래도 제게 실형을 안주고 집행유예를 내릴 때가 있어요."

평범한 서민의 삶을 살아왔고 살고 있고 추구하는 김종대 국회의원은 이제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한민국에 울려퍼지게 할 스피커 역할의 '온리원' 정치인을 꿈꾸고 있다.

 

셀프 프로필

-청주 주성초·세광중·청주고 졸업
-노무현 대통령비서실 국방보좌관실 행정관(前)
-국무총리 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前)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前)
-정의당 제20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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