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외교전쟁, 무역전쟁, 대내적으로는 범죄와의 전쟁,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서울대 입시안과의 전쟁, 온 세상이 전쟁판이다. 전쟁은 비극이며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에 관한 일단의 내용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거론하면서 피력한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전쟁 당시의 명분은 모두 그럴 듯 한 것들 이었으나 세월이 흐르고 나면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라는 요지의 내용이다.

그 같은 발언이 아직 잉크도 마르기 전에 전쟁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물론 노대통령이 전쟁이라는 발언을 직접 하지는 않았으나 서울대의 논술 강화라는 발표에 대해 가장 나쁜 뉴스라는 선전포고를 하자마자 이에 당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쟁을 알리는 발포를 하고나온 것이다. 그것도 국지전도 아니고 전면전이라는 것이다. 아마 서울대가 정부정책에 고분고분하지 않고 사사건건 부딪히며 갈등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발언을 빌미로 본때를 보여줄 요량으로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기본적으로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 무력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 아니던가. 또한 전쟁에는 반드시 피아(彼我)가 있는 법,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를 구체적으로 알아야 싸움의 결과를 지켜볼 수 있을 터인데,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헷갈린다. 얼마 전 전방 비무장지대의 관측초소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 총기 난사사건에서 시사하는 바는 상황발생 초기에 피아가 정확하게 구분되었더라면 피해를 최소화 시켰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적군이 침투를 한 것인지, 내부의 소행인지를 알았어야 적절한 대응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의 특징은 피아가 정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이렇게 적이 불명확한 상황 속에서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결국 노대통령의 선전포고대로 전쟁은 시작되었다. 이 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전쟁은 하드웨어와 같은 전략장비 및 물자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요소들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당정이 하드웨어적 측면에서 강한 힘을 지닌다고 보면 어쩌면 서울대를 쉽게 제압할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생각이다. 거기에는 교육적 다양성, 교육력 제고 등을 원하는 다수의 적 같은 아군들이 있으며 이들 역시 노대통령이 항상 ‘친애하는 국민여러분’에 속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모두가 대통령에게 선적(善的) 존재의미로 다가가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 중에는 상당수 논술강화와 같이 변별력을 강화시켜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시환경을 만들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도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당정은 전쟁에 앞서 이와 같은 상황의 전후 맥락은 물론 전쟁 후, 벌어질 피해상황 등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전쟁은 안 된다. 전쟁은 비극 중의 비극이다. 또한 전쟁에는 명분이 없다. 대통령이 대학 입시안을 놓고 전쟁을 치른다는 것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이제 대학이 학생들을 자율적으로 선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일정부분 도와주어야 한다. 이를 옭매어서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당국은 군사정권 이후 대학들이 최악의 자율성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들을 새겨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육의 자율성을 옥죄는 교육 권위주의 정부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전쟁은 있으되 역사적 명분은 없다는 대통령의 말대로 하루 빨리 명분 없는 전쟁을 거두어들이길 바란다. 우리는 대학입시안에 대해서 까지 대통령이 나서는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평론갇문학박사 한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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